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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궁
우리 엄니 신년 초만 되시면 다니는 절에 가서 유명한 스님께 제 1년 토정비결을 보신답니다.
근데 올해는 결혼 운이 있다면서 그 노 스님이 엄니께 말씀하셨나 봅니다.
낮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더군요
"올해는 장례식에 가지마라. 시체를 보면 네 운명이 단축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올해는 결혼 운이 있다는데 그랬으면 오죽 좋으랴"
전화로 엄니의 말씀을 듣는 순간, '여자랑 결혼하기는 틀린 몸, 올해는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을 하는 건가, 그래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앤이랑 결혼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지금 집안 상황으로 조만간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을 하게 될지고 모르거든요.

이번 설에 내려가서 또 선을 봤답니다.
저랑 마주 보고 앉아있는 아가씨에겐 미안하지만, 결혼 생각이 없다고 얘기했죠.
솔직히 남자를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고.....
역시 선 끝나고 집에 돌아왔더니 부모님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더군요.
내가 별로 였다고 말씀 드리는 순간 실망하시는 엄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니 왈 " 너가 빨리 가야지 **이 시집을 간다" 저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하시더라구요.
참고로 제 밑에 여동생이 3명. 첫째 동생은 시집가서 애가 셋이지만 둘째는 결혼 적령기를
훨씬 지났는데 이번에도 오빠보다 먼저 갈 수 없다며 울 엄니가 동생을 놔주질 않고 있네요.
난 괜찮다고 먼저 보내라고 항상 얘기하지만, 이번에도 동생이 먼저가면 제가 어디 모자라거나 이상한 놈 취급받는다면서 한사코 제가 먼저 가야한다며 부담을 주네요.

근데 오늘 엄니 전화를 받는 순간, 아! 뜻하지 않게 커밍아웃을 해야되겠군, 그러면 지금 살고 있는 앤이랑 결혼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저의 대왕마마(이궁 나 왕자병이 아닌데..)가 지금 수술을 해야할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로 수술 받으로 오신다면 제 엄니는 저의 집에서 왔다갔다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앤이랑 같이 사는 저는 커밍아웃을 할 수 밖에 없답니다.

각설하고, '그 노스님이 정말 용하시게 제 사주를 봐주시는 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궁.
지금으로서는 커밍아웃을 하고 더 이상 부모님을 속이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들고, 만약 아들이 게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심정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기도 하네요.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겠죠.
그래서 오늘은 이래저래 마음이 짠하네요.
그래도 한평생 같이 할 앤이 옆에 있어서 힘이 된답니다.(절대 솔로들 염장지를 생각은 없음)
오늘 같은 전화는 다시 안받았으면 좋으련만.....

  • ?
    한군 2004.01.28 10:28
    좋은 기운 많이 받으셔서 힘내세요!!
  • profile
    라이카 2004.01.28 13:50
    형 힘내요. 화이팅.
  • ?
    푸른바다 2004.03.20 19:04
    잘 되길 빕니다. 의외로 그럴줄 알았다라고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 ?
    난디.. 2004.04.03 03:32
    앙 ~
    울집은 커밍아웃 꿈에도 못 꾸는 아버지가 엄청난 보수판디...
    내 앞 날은 어찌 되려나..
  • ?
    루이스 2007.12.06 02:13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커밍아웃해서 편하게살아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말 죽겠습니다.
    그냥 솔직히 커밍아웃해서 편하게 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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