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와 실화 : 이태원에서 뺨 맞다

by 장금이 posted Oct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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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홈페이지 한 달 1만 명 접속자 수 쟁취를 위해.... 요즘에 마비된 필력을 대신해 그전에 썼던 글들 자주 퍼옵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

옮기다 보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에겐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까지 이르는 시간이 참으로 뒤죽박죽이라고. 당분간 내밀한 걸 내밀지 말아야겠어요. 눈을 지우고 입을 가려, 다시 숨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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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후배한테 들은 몽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몽고 남자들은 여자에게 '마음에 든다, 우리 사랑을 나누자'라고 이야기 할 때는 '우리 산에 가자'라고 이야기한단다.

베트남 산골 마을에선 밤이 어슬어슬 내린 시각에 숲속의 오두막 집에 처녀 총각이 모여 서로 구애를 한다. 그들은 곱다시 단장을 했기 때문에 화려한 색깔의 새들처럼 마음에 드는 짝 옆으로 다가가 수줍게 서로의 옷을 칭찬한다.

생존하는 유목민 중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소문난 마사오족은 남자라면 소떼를 모는 '청소년 그룹'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일정한 기간이 되면 마을의 소녀가 청소년 그룹이 묵고 있는 막사에 낙엽 소리를 내며 찾아온다. 소녀는 부끄러운 듯이 가장 마음에 드는 청년을 손가락으로 선택해 숲 속의 안락한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리고 여직껏 체면의 성 문화와 개방적 성 문화가 요란하게 혼동되어 있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술 취한 걸 핑계 삼아 이렇게 말한다.

"우리집에 가서 술 마시자."

얼마 전 난 그렇게 말했다가 이태원 길거리에서 뺨을 얻어 맞았다. 생전 처음 만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원나잇 스탠드 같은 거 안 해요!"

문화의 차이 만큼 개인의 표현 양식의 차이도 천양지차다. 그 차이를 조율하는 데 드는 인내의 비용을 우리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상호 관계를 위해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만 성격이 급한 난 인내의 비용을 지불하는 걸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모든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상대주의가 사실 못마땅하다. 게다가 낮의 체면과 밤의 욕망이 기름과 물처럼 둥둥 따로 떠다니는 한국의 도덕, 특히 한국의 압축된 근대화를 반영이나 하듯 훨씬 더 집요하게 위선적인 게이 커뮤니티의 성 모랄에 대해서는 그다지 인내의 비용을 지불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앞으로도 난 우리집에 가자, 라고 말할 것이고 언젠가는 또다시 뺨을 얻어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태원에서처럼 발악 화를 내고 그렇듯 마초적인 행각을 벌이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왼뺨까지 들이밀며 줏대 없이 웃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반대로 왜 아무도 나에게 '우리집에 가서 술 마시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거지?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1-02 0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