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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8 12:46

호모의 손

조회 수 3900 추천 수 26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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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손이 못생겼다. 사람들은 단지증이라고 약올리기 일쑤다. 아마도 내가 손이 매력적으로 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그 탓일 게다.

다른 사람의 손을 만지작거리면 그 사람의 삶을 대충이나마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손에는 노동의 흔적과, 냄새와, 체온과 그리고 나에 대한 반응의 열기가 고스란히, 숨기지 못한 채 노출되어 있다. 만일 내가 손금 이야기를 꺼내며 처음 만난 사람의 손을 만지려 드는 순간은 열이면 열,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손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손은 얼굴 표정보다 훨씬 더 상대방의 삶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다채로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얼굴보다 손이 기여한 바가 훨씬 큰 탓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은 촉감의 언어로 추상의 관념을 극복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2.

김영하는 손을 주제로 어느 단편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손은 사람의 마음이 즉물적으로 담겨 있는, 일종의 전도체다. 손으로 콧등을 만지는 행위, 바지 주머니 속에 숨겨놓는 일, 다소곳하게 두 손을 잡고 있는 것 등 그 사람의 손이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에 따라 마음을 읽어낼 소지가 농후한 것이다.

특히나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호모들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수줍게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김영하는 그것을 소재로 삼았다. 손을 감추는 호모에 관한 이야기.

김영하 스스로 베끼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가 애초에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19세기 미국 초절주의자 중 한 명인 앤더슨(?, 그 사람의 책이 모두 시골집에 있어 지금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의 '손'이란 단편과 그의 소설이 닮아 있다.

단편 '손'은 손을 감추는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선생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학생들을 그는 사랑스럽게 만지곤 했다. 소년들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지던 그의 손. 그러던 어느 날 질투를 느낀 한 학생이 그 사실을 부모에게 일러 바친다. 때는 주홍글씨의 19세기다. 마을 사람들은 밧줄을 들고 선생 집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즉결 심판인 셈이다.

나중에 천신만고 끝에 선생은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지방에 숨어 살게 되었다. 노년이 되어서까지 그는 사람들 앞에 자신의 손을 드러내놓지 못한다. 특히 잘 생긴 청년 앞에서 그의 손은 표정을 거둔 채 어딘가로 숨어버리곤 한다. 초절주의자답게 작가는 19세기 미국의 청교도의 엄격한 도덕율을 젊은 기자의 눈을 빌려 실랄하게 조롱한다. 노인은 젊고 잘 생긴 기자 앞에서 수줍은 자기 손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고 처연하게 사라진다.

호모의 손은 종종 소설 속에 차용되어왔다. 뵈블린의 '알렉산더 광장'에 나오는 중년 신사 역시 동성애에 대한 비극을 자신의 손 탓으로 돌린다. 아름다운 미소년을 좋아하는 자신의 손을 탓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 신사는 시각적 욕망 이후에 찾아오는 손의 욕망, 상대방을 만지고픈 그 격렬한 욕망을 토로하지만 토마스 만의 이중적인 도덕률에 의해 결국 단죄되고 만다.

호모들의 손은 그 사회의 도덕적 관용도와 마주한 내밀한 사적 욕망을 은유한다. 어두운 극장에서 심해 연체 동물의 촉수처럼 꿈틀거리던 손들은 찬란한 햇빛 속에서 돌연 눈이 멀어버리곤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호모의 손끝엔 잠망경처럼 눈이 달려 있다. 1990년대까지 우리는 줄곧 그래왔다.


3.

수줍은 기색으로 숨어 있는 손, 어딘가를 향해 덩쿨처럼 뻗어나가는 손. 호모들의 손, 이젠 낮에도 거리낌없이 반짝거리며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연인의 마음을 촉감하며 다정스레 손을 잡고 가는 남자의 손. 나는 그것이 내 안의 작은 혁명이지 않을까 하고 속좁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여전히 감각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이들과 더불어.





몇 년 전 다른 나라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
    아비 2004.05.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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