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게이적 글쓰기' 방에 올렸던 글인데, 여기 방으로 옮겨놓습니다. 여기 코너는 게이들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허심탄회한 글마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그렇지만 군대를 나온 아, 대한민국의 여느 남자들처럼 난 그를 '소대장님'이라고 불렀었다.
제대, 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6방 소집해제 이후 한 일주일이나 흘렀을까? 시골집 마당의 두엄자리에 모깃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단다.
마루에 길게 누워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나야."
"네?"
"소대장."
"아, 소대장님!"
"그래 잘 있었어? 나 지금 통신대대 막사에서 전화하는 거다. 들키면 죽어."
우리는 사회생활 뭐 잘해라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울러 당신도 곧 제대할 테니 그때 사제 인간으로 만나자는 이야기도. 물론 우리는 그 이후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그가 허리가 아파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무슨 요상한 포토샵 효과가 발효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밤 통신대대 막사에서 전화하는 그의 모습과 마루에 길게 누워 전화를 받던 내 모습은 맑고 상쾌한 여름 밤을 배경 삼은 알딸딸한 정념의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는 하사관 출신으로 우리 소대를 맡고 있는 소대장, 그리고 난 기동대 전원의 눈치밥을 배불리 얻어 먹고 있는 6방의 막내 쫄다구였다. 난 총알을 쏘라면 남의 타켓에다 몰아주고 정신교육 시간에는 정보 장교를 무시한 채 혼자 사회주의 강독을 떠맡다시피 한 문제아인 반면, 시쳇말로 그는 FM이었다. 저렇듯 빈틈없이 각진 생활이 저리도 좋을까 싶었지만, 군대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가 점점 좋아졌던 것 같다.
특히나 내무반 담당인 관계로 아침 일찍 부대로 출근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부대 숲속에서 혼자 아침 운동을 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몸은 탄탄하다 못해 근육질이었고, 저렇게 근육질의 몸매인 인간도 저런 귀엽고 작은 머리통을 지닐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잘 생긴 얼굴은 사람을 끄는 구석이 많았다.
"소대장님, 운동하세요?"
"아, 희일이구나. 일찍 왔네."
어쩌면 내가 남성의 몸에서 느끼는 묘한 쾌감의 첫 번째 수여자는 그일지도 모르겠다. 푸른 봄날(난 6방인 관계로 3월에 부대에 들어갔다가 9월에 나왔으니까)의 아침마다 벌거벗은 웃통으로 숲속에서 운동을 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껏 흙과 소나무 냄새와 뒤섞인 채 이따금 생각나는 걸 보면.
그런 그와 운 좋게 딱 한 번 같은 천막에서 잘 기회가 있었다. 여름, 전투수영을 받느라 우리 부대는 군산 근처의 바닷가에 가 있었다. 지금도 그때 받았던 전투 수영을 떠올리면 두 가지 단어가 기억난다. 우리 훈련 직전에 다른 부대 누군가 훈련을 받다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있었고, 우리 대대장은 오전에만 우리에게 훈련을 시키고 오후에는 축구나 다른 오락거리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오후가 되면 난 천막 앞에 길게 누운 채 수첩에 갖가지 말도 안 되는 시나부랭이를 끄적이곤 했는데, 해변가에서 축구를 하는 반벌거숭이 부대원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를 흉내내느라 '금빛나는 육체', 그리고 '부신'에 관해 시를 썼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전투 수영을 하던 중, 우리 소대 통신 담당이 급히 다른 곳으로 불려 가는 바람에 내가 무전기를 맡게 되었고 그 날 밤은 무전기 옆에서 대기하느라 소대장과 함께 천막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러분은 그날 밤 내 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 뛰었는지 모를 게다.
시큼한 여름 풀내가 진동하던 천막 안에서 고르게 자맥질하던 그의 가슴팍을 느끼며, 난 내 몸과 마음이 대체 어떻게 확장되고 어떤 리듬으로 춤을 추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았다. 숨 막힐 것 같은 당시의 긴장감은 지금에와서 생각해도 낯설지만 충분히 감각적인 무엇이었다. 바닷가에서 불어와 소나무 가지를 살랑이게 하는 고요한 바람 소리 속에서 난 내 속의 또다른 나의 성적 존재를 감지했던 것 같다. 그때 내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그리고 모기보다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묘연한 의심과 망설임으로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다시 학교로 복귀한 내 앞엔 운동이네, 이론이네 하는 버거운 현실이 놓여져 있었고, 난 내 속을 바람처럼 헤집고 간 그 날의 여름밤에 대해 까마득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존재의 고민과 개인의 성적 취향쯤이야 대의 앞에선 모조리 기각시켜도 된다는 막막한 교조주의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소대장과의 하룻밤, 그리고 통신대대에서 온 전화 한 통, 다른 사람 눈엔 뭐 그렇고 그런 옛날의 일상일 수 있겠지만, 이제와 벌거벗겨진 감정 앞에 수줍음도 없어진 나에게는 막 청춘의 문턱에 입성하면서 느낀 최초의 성욕의 이미지임에 분명할 게다.
그는 지금쯤 뭘 하고 살까? 하긴 그의 이름도 까무룩히 잊어버린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