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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커버스토리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 #1] 박재경님·이종걸님 인터뷰 - 1. 모든 성소수자에겐 청소년 시절이 있다
2022-03-02 오전 10: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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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월 

 

[커버스토리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 #1]

박재경님·이종걸님 인터뷰

- 1. 모든 성소수자에겐 청소년 시절이 있다

 

 

1. 2010년 이전 친구사이의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 :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교사지침서
2. 2010~2012년 친구사이 대표의 늦은 게이커뮤니티 데뷔와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
3. 2010~2012년 친구사이의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 : 포토보이스, 무지개 도서 보내기
4. 2010년 이전 친구사이의 연대사업 : 인권단체연석회의, 성전환자 공동연대, 반차별공동행동
5. 2010년 친구사이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합류 및 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 조례안 포함 
6. 2010~2011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의 조례안 주민발의 서명운동 
7. 2011년 9월 8일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조직
8. 2011년 11월 15일 학교 내 성적소수자 차별 사례 모음집 발간
9. 2010년 청소년 사회적 욕구조사 공약과 2014년의 한국 LGBTI 사회적 욕구조사 발간
10. 2011년 9~10월 서울학생인권조례 및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트위터·페이스북·게이 어플 캠페인
11. 2011년 9월 19일 친구사이의 온라인 캠페인 <내 새끼 구출 작전!(Saving my Gayby)>
12. 2011년 12월 14~19일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의 서울시의회 점거농성
13. 2011년 12월 17일 점거농성장에서 개최된 친구사이 송년회
14. 2011년 서울시의회 내 민주당/민주통합당 의원들에 대한 성소수자 인권운동 측의 복마전
15.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지키는 과정에서의 운동 내부의 복마전
16. 2011년 12월 19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서울시의회 통과와 승리의 경험, 그 이후의 과제
17. 친구사이의 청소년 관련 사업에 대한 회고와 전망
18. 2011~2012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활동과 2019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혐오표현 금지조항 합헌 결정
19. 2010~2012년 청소년 인권운동 및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회고

 

 

 

* 2012년 1월 26일,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이 포함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공포되었습니다. 조례가 제정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친구사이 소식지팀에서는 게이커뮤니티의 입장, 친구사이의 입장에서 당시의 운동과 커뮤니티의 상황 및 맥락을 기록하고, 그 성과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인터뷰에 임해주신 분은 2010~2012년 친구사이 대표 박재경(박재완)님과, 같은 시기 친구사이 상근간사로 활동하시고 2011년 1월부터 현재까지 친구사이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인 이종걸님입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셨던 두분의 인터뷰는 각각 2022년 2월 17일, 2월 9일에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진행되었고, 사진 촬영을 제외한 인터뷰 중에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였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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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2012년 친구사이 대표 박재경님 (2022.2.17)

 

 

 

터울 : 친구사이 소식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재경(박재완)님, 이종걸님께 감사드립니다. 게이커뮤니티를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 2010~2012년은 기념비적인 해라 평가되는데요. 이 3년의 시기에 친구사이 대표와 상근간사·사무국장을 각각 맡아주셨던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 2010년 이전 친구사이의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

: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1998~2006),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지침서(2005)

 

 

터울 : 먼저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 관련해서 운을 뗐으면 좋겠어요. 오늘 인터뷰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시기는 2010~2012년이지만, 2010년 이전을 보면 1997~2006년에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를 진행했고, 2005년에는 친구사이가 국가인권위원회 기금을 받아서 청소년 동성애자 관련 사업을 했었죠. 종걸이형의 경우는 이렇게 친구사이 안에서 청소년 관련 의제를 사업적으로 쌓아나갔던 현장에 2000년대 초반부터 줄곧 계셨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회고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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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09 : 성소수자 커뮤니티, 청소년을 품다」, 『친구사이 소식지』 54, 2014.12.  

 

 

 

이종걸 : 저는 2003년 말부터 친구사이 활동을 처음 시작했는데, 그 때 친구사이 사업 중에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관련해서는 저도 활동 초기부터 알고 있었어요. 이 활동은 1998년 당시 친구사이의 기획과 제안으로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는데, 제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희일이형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고, 2004년부터는 가람이 친구사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친구사이 회원들과 사업을 이어나갔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 사업은 어떤 청소년 인권운동의 관점이라기보다는, 동성애자 또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이나 문화를 알아갈 수 있는 경로가 많이 제한되어 있고, 그걸 알아가기 위해서는 초기부터 거기에 적합한 환경이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으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 학교, 가족,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고,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돕는 부분들, 그것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라도 경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착상에서 시작된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던 것은 2006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 해 대표였기도 했고. 

 

그런데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대한 내부적 고민은, 2005년도부터 막상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대한 참여가 많지 않은 상황, 그리고 이 사업이 친구사이가 주최한다기보다는 기획단을 같이 꾸려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때 당시에 친구사이 회원들이 과연 이 사업에 대한 의미를 잘 새기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만해도 그 때는 이 활동을 잘 아는 채로 논의 테이블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저에게도 당시 회원들에게도 그 의미가 잘 공유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업으로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거기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청소년 성소수자가 더 이상 아니라는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꼭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이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의 필요성은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단위, 특히 대학교 내 모임 등이 두루 공유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표를 했던 2006년의 인권학교 때는 대학 내 동아리가 좀더 관여해서 사업을 진행했었죠. 서울대 QIS나 고려대 사람과사람(P2P), 연세대 컴투게더, 성균관대 성퀴인(현 퀴어홀릭), 그 당시에 주로 활성화돼있던 모임들이 같이 참여했었던 것 같아요. 

 

인권학교 진행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려보면, 인권학교에서 1박 2일 또는 2박 3일 캠프를 진행하게 될 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사전 논의나 합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나요. 그 중의 하나가 음주와 관련된 의제였는데요. 2005년 인권학교 당시 2박 3일 캠프를 진행했었어요. 음주를 할 수 있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당사자가 음주를 원할 경우 상호 동의 하에 음주 가능 공간에 출입할 수 있도록 했었는데, 그런 결정과 거기에 깔린 이유들에 대해 소통이 잘 안되거나, 친구사이 안에서 이 문제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청소년이 어떻게 음주를 하냐는 회원도 있을 수 있었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가 왜 필요하고, 우리가 왜 이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기존 회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청소년들이 오기보다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라틴(Rateen)같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에 청소년들이 자체적으로 활동하는 비중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친구사이로서는 아무래도 인권학교를 진행하기보다는 청소년 스스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나, 그렇게 입장이 변화했던 것 같아요. 

 

터울 :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가 확장되면서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의 역량이 늘어난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일 수 있겠네요. 더불어 친구사이와 대학 모임과의 관계가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를 중심으로 이어졌다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인터뷰를 준비하다보니, 2005년에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 및 교사지침서 발간의 주역으로 활동하셨던 가람이형을 한번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이종걸 : 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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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청소년사업팀,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지침서, 2005.

 

 

 

터울 : 대표를 역임하셨던 2006~2007년을 전후로 친구사이가 청소년 및 교육 이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입장과 활동을 좀더 여쭙고 싶은데요. 2006년 <중등우리교육>의 기사를 보니까, 친구사이가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대학 모임과 더불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관계를 맺어나갔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종걸 : 2006년 당시에 가람이 그 사업에 집중을 했던 것은, 그 때가 가람이 국어교사로서 교직에 뜻이 있어서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였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조직과도 연결될 수 있는 바탕이 있었던 시기였죠. 그리고 전교조가 워낙 큰 조직이어서 조직 전체와 관계맺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조합원 선생님들 가운데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교사분들과는 일정한 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2005년에 친구사이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된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지침서>를 같이 써주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주로 그분들이 조직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당시 한세전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정연희 선생님 등이 계셨었죠.

 

터울 : 그 때 당시를 다룬 2006년의 <중등우리교육>이라는 전교조 기관지에 친구사이가 주관했던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 관련 글이 있더라고요. 이 잡지에는 일찍이 1998년 청소년 동성애자 관련 이송희일님의 글이 실리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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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左) 이희일, 청소년 동성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중등우리교육 104, 우리교육, 1998.10.
 (右) 조용진, 청소년 동성애 이해 프로그램 - 이성애나 동성애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중등우리교육 195, 우리교육, 2006.5.


 

 

 

2. 2010~2012년 친구사이 대표의 늦은 게이커뮤니티 데뷔와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

 

 

터울 : 재경이형이 2010년  처음 대표를 시작하셨을 때의 포부가 궁금해요. 어떤 마음가짐이나 계획을 가지고 있으셨는지, 

 

박재경 : 큰 포부는 없었고, 지보이스에서 너무 행복하게 활동하다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형이 대표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는 안한다고 대답하고 그랬어요. 특히 가람이가 한 6개월동안 설득을 했는데 나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어요. 어느 여름날 밤에 본드네 포차에서 술마시면 가람이 특유의 애교섞인 목소리로 '형이 대표했으면 좋겠어요' 막 이렇게 해서, (웃음) 그 얘기를 한 6개월동안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술취했나, 그랬는데 그게 가람이의 작전이었다고 나중에 얘기해주더라고요. '내가 형 대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 줄 알아?' 이러고. (웃음) 

 

그렇게 하면서 대표를 하게 됐는데, 여러 타이밍이 교묘하게 맞았죠. 2009년 커밍아웃 인터뷰도 사실은 대표 때문에 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 인터뷰를 하게 됐고, 그 인터뷰의 공개 시점이 대표로 선출된 정기총회 일자랑 맞물리게 됐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어떤 그림처럼 보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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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밍아웃 인터뷰 21 - 박재완 : He is beautiful」, 2009.11.

 

 


터울 : 2009년 커밍아웃 인터뷰 때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 해보고 싶단 얘기를 하셨었는데요. 제가 알기로 되게 늦게 게이커뮤니티에 나오셨잖아요. 서른 중반에 나오셨는데, 저는 서른에 나왔고요. (웃음)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셨던 계기가 궁금해요.

 

박재경 : 일단은 성정체성을 내 스스로 수용하는 데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그런 고민을 성인이 되어서도 죽 해오고 늦게까지 끌어왔었기 때문에, 나 그런 것에 어려움을 겪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찰나에 친구사이에 나왔기 때문에, 친구사이 활동하면서 친구사이로부터 지지나 격려를 받는 과정이 있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대표에 선출되기 전에는 지보이스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지보이스 총무 활동을 했고, 친구사이 총무도 했었고. 아무튼 그런 배경이 첫번째로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두번째로 친구사이 대표가 되어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고민이 많았는데, (웃음) 친구사이 대표하면서 단체들을 죽 봤을 때, 친구사이를 포함한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초창기에 세워지고 나서 초반에 많이 했던 활동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활동이었고, 재정 조건이 열악한 속에서도 나름대로 기획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 세대들이 후배들이 겪을 환경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그런 사업을 벌여왔을 텐데, 제가 친구사이를 나오고 대표를 할 때쯤에는 친구사이에서 청소년 관련 사업이 다소 위축돼있던 시기였어요. 

 

터울 : 전에는 이런저런 활동과 시도가 있었으나, 

 

박재경 : 대신에 친구사이 홈페이지 스탭게시판의 과거 게시물을 보면, 당시에 열심히 활동했던 친구사이 회원들이 올린 사업계획서들이 꽤 많이 있어요, 청소년 사업과 관련해서. 그래서 대표를 할 때는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할지 고민하게 되니까, 일단 단체 내에 축적된 자료를 뒤적여봤을 때 청소년 사업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리고 친구사이 내부에서 청소년 사업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외국 문헌을 번역해놓은 것도 있었고.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이건 좀 해보면 좋았을 텐데 왜 안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외국은 벌써 학교 교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든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활동할 것인지 등에 대한 실질적인 활동과 조직들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많이 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것들을 하는 게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터울 : 예전에 친구사이가 청소년 사업을 안한 건 아니었지만, 했던 것들보다는 주로 계획 단계에 머물렀던 기획서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셨던 거군요.

 

박재경 : 네. 

 

터울 : 사소한 질문일 수 있는데, 친구사이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처음 딱 왔을 때. 

 

박재경 : 2006년 봄에 처음 왔는데, 친구사이는 그 때 굉장히 조그만 2평짜리 사무실에, 사람들이 그 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족발에 소주를 먹으면서 뭔가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고 있는 장소에 가게 됐던 게 첫인상이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그 때는 좀 초라해보였어요.

 

터울 : 왜요?

 

박재경 : 너무 가난한 모습이어서요. 어쨌든 그 조그만 모습에서 사람들이 모여 웃고 자기들끼리 행복해보이긴 했는데, 물론 지금도 친구사이 사무실이 풍족한 건 아니지만, 그 때는 애걔? 그런 느낌이었어요. 건물 자체도 좋은 건물이 아니었고. 

 

터울 : 되게 솔직한 말씀이시네요. 

 

박재경 : 그래서 왜 이렇게 가난한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터울 : 어떤 의미에선 그래서 실망하고 다시 안오셨을 수도 있는데, 친구사이에 계속 오시면서 그런 여건과 환경을 확장하고 넓히고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품으셨던 게 인상적이네요.

 

박재경 : 그 때 나를 봤던 라이카 교육팀장은 '이상한 년' 들어왔다고 생각했대요. 그 때 그 형이 무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걸 했어요. 아마 당시 운영위원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데 그냥 이렇게 있다가 나가고 하는 것보다는 교육도 좀 하고 뭐 이렇게 좀 했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나봐요. 그 때 날 처음 보고 그렇게 생각했대요. 정신세계가 이상한 애가 들어왔다고. (웃음) 

 

터울 : 그랬던 분께서 지금까지 친구사이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계시죠. (웃음)

 

 

 

 

▲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함께할 10대 게이를 초대합니다!」, 2011.6.9.




3. 2010~2012년 친구사이의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

: 무지개 도서 보내기 운동(2010), 포토보이스 프로젝트 ‘10대 게이, 사진으로 말하다’(2011)

 

 

터울 : 대표 재직 시절의 2011년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비롯해 당시 친구사이 내에서 진행한 청소년 관련 사업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박재경 : 사실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는 저만의 창조적인 사업 아이디어는 아니었고, 이미 외국에서 했던 사업이었어요. 외국의 경우는 그 사업에 전문가들이 개입되어있고, 그 전문가들이 사진에 대한 스킬이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방법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컨텐츠를 사회운동 차원에서 활용하고 의제화하는 운동이었어요. 그걸 문헌을 통해 확인하고 우리도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당시에 친구사이에 몽(김성진)형이라고 문화기획자가 있으셨고, 대표인 제가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질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 섭외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단위 구성은 몽형을 통해서 했어요. 그걸로 아름다운재단 기금을 신청했다가 떨어졌고, (웃음) 떨어졌지만 친구사이 자체 예산으로,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진행했었죠. 한번에만 그친 건 아니었고 2회까지는 진행했었어요. 

 

터울 : 형이 친구사이 안에서든 밖에서든 2010~2012년 당시에 만나셨던 청소년 당사자들 중에 기억나는 분들이 있으세요?

 

박재경 : 어떻게 하다보니 친구사이에 청소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우리가 그냥 생각없이 지내왔던 문화와 계속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죠.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 생각나는 친구는, 집에서 무작정 가출해서 화장실에서 한 일주일 생활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친구사이 사무실에 가방 끌고 온 친구가 생각나네요. 그 다음에 청소년 때 나와서, 지금은 대학교 졸업해서 열심히 자기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고. 중학생 때 나와서 성인이라고 속였다가 나중에 실제 나이가 탄로난 친구도 생각나고. (웃음) 

 

그리고 그 때 당시에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도 청소년들이 많이 갔어요. 동인련은 아예 청소년 당사자들이 포함된 단체 사업팀과 소모임이 구성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친구사이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넓은 회원들 중에 그 친구들이 온 거고, 그 친구들이 왔기 때문에 우리는 뒷풀이할 때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식이었던 것 같고. 

 

 

 

 

▲ 「무지개 도서 보내기 : 우리 동네 도서관에 무지개가 뜬다!」, 2010.10.6.

 

 

 

터울 : 그래도 대표 시절에 청소년 관련 사업은 꾸준히 진행해오셨는데요. 무지개 도서 보내기 운동도 진행하셨더라고요.

 

박재경 : 그것도 여러 문헌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은 건데, 도서관을 성소수자 친화적으로 바꾸고 호모포비아의 책을 몰아내고 우리의 책을 비치하는 그런 활동을 했어요. 그 때 다행히도 친구사이에 대미지라는 책벌레 회원이 한명 있는 거예요. 그분이 매해 한국에서 나온 성소수자 도서 목록을 다 정리하고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했죠. 또 그 때 마침 친구사이에서 게이 컬쳐 홀릭(씨네21북스,2011)이라는 책을 당시에 발간했기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외부적으로 이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는 운동을 해보자는 취지도 있었죠. 그것도 한 2년에 걸쳐 진행했었고, 회원들이 되게 열심히 참여했었어요. 서점 가서 싸우는 애들도 있었고, 도서관에 가서 항의하는 애들도 있었고 등등. 보이지 않게 조그맣게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되게 많았었죠. 무지개 도서 보내기 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보기엔 너무나 무난한 내용인데 문제를 삼는다든지, 도서관에 비치된 게이 컬쳐 홀릭 중 일부 페이지가 찢겨 있다든지, 이런 식의 제보도 그 때 받았었고. 어쨌든 청소년 이슈 관련해서 친구사이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사업을 죽 진행했었죠. 

 

터울 : 제가 경험한 바로는 2019년 출간된 선게이서울 : 지보이스 스토리북 창단 17주년 특별판의 사례가 떠오르는데요. 기금 사업으로 진행된 출판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각 공공도서관에 뿌려지게 됐죠. 그런데 몇몇 도서관측에서 어떻게 이런 책을 꽂아놓느냐는 식의 피드백이 왔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재경 : 기관 측에서 항의가 들어오지는 않았던 대신에, 우리가 실제로 책이 비치되었는지 알아보려고 몇 군데 전화해보면 비치를 아예 안한 경우들이 있었죠. 또 그런 경우들 중에는, 책에 공식출판물로서 찍히는 ISBN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가 보낸 책들 중에 자료집 같은 것은 서가 비치가 원칙상 불가능해서 이용자 배부용으로 두었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도 공식적인 형태의 책 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 때 알게 된 거죠. 그런 이유 때문에 친구사이가 출판업을 하게 되었던 거예요. 

 

터울 : 네, 지금은 친구사이에서 나오는 발간물은 거의 전부 ISBN이 찍혀서 나오죠. 

 

박재경 : 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게 서가 비치를 기피하는 하나의 타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다 그런 경험을 거치면서 그런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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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게이 컬쳐 홀릭 : 친절한 게이문화 안내서』, 씨네21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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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게이서울 : 지보이스 스토리북 창단 17주년 특별판』, 2019.

 

 

 


4. 2010년 이전 친구사이의 연대사업
: 인권단체연석회의(2004),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2006), 반차별공동행동(2007)

 

 

터울 :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2010년 이전에 친구사이가 관계했던 연대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게이커뮤니티의 일원들이 종로·이태원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것도 있지만, 시위판에서 서로를 발견할 때도 있잖아요. 가령 1997년 6월 28일에 탑골공원 앞에서 중고교 교과서의 성소수자 차별에 문제제기했던 집회가 성소수자 단체 최초의 장외 집회라고 알고 있는데, 그 전에도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의 안기부법·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이듬해 총파업 국면에서 성소수자 개인들이 그 자리에 나가면서 서로를 확인했던 역사가 있고요. 

 

그리고 2004년 6월 17일 출범한 인권단체연석회의에 친구사이가 2007년 6월 17일 정식 가입하게 되는데, 그 전인 2006년 4월 12일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출범할 때 이미 거기에 친구사이와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모두 참가했었더라고요. 또 그 해에 국가인권위원회 기금으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이 쓴 『성전환자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가 발간되었고요. 이 때도 종걸이형이 대표를 하셨던 때였는데, 당시 친구사이에서 이 활동에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고, 위 연대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갔는지 여쭙고 싶어요. 

 

이종걸 : 제가 대표를 하면서 친구사이가 연대 단위를 확장하게 되었던 건데, 그 때 친구사이가 인권단체냐 아니냐, 그런 논쟁들이 내부에서도 많았던 것 같고, 우리가 사실 대외적으로 운동단체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단위인데 당시에 왜 그게 잘 안될까라는 내부적인 고민이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도 좀더 외부적으로 운동단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단체의 대표로서도, 

 

이종걸 : 네. 그래서 인권단체연석회의라고 하면 어느 정도 한국의 전반적인 인권단체들간의 네트워크 가운데 대표적인 연대 단위였고, 거기에 이미 한국레즈비언상담소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가 있었던 상황에서 친구사이가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 명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2007년에 처음으로 들어가기로 한 거죠. 

 

터울 : 2006년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에는 친구사이가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이종걸 : 그 당시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많은 단체들이 결합해 사업을 진행하고 의제를 논의한 때였어서, 친구사이는 구체적인 역할을 가져가기 보다는 그래도 우리가 이 이슈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가야 되지 않겠나, 그런 차원에서 연대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리고 2007년 11월 28일 반차별공동행동(준)(이하 반차공)이 출범했고, 이곳이 현재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전신이 되는 조직인데요. 이 때도 초기부터 친구사이가 결합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2010년 반차공에서 6회에 걸쳐 열린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에도 친구사이 활동가들이 패널로 참여했었고요. 

 

이종걸 : 그 때에는 당시 사무국장이셨던 기호형이 반차공 회의에 들어가셨었죠.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의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논의는 주로 왜 우리가 삭제되었을까,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이 왜 법무부측 초안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런 것이었다면, 그것을 넘어서 차별금지법이 어떤 법이고 그게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우리 안의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논의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꼭 성소수자 단위만이 아니라 기존에 반차별 운동을 하고 있거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단위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2007년 반차공이 출범할 때 많은 단체들이 함께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묘하게 교차적인 관점에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던 사람들이 거기에 모였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터울 : 성소수자 이슈를 포함해 거기에 얽혀있는 교차적인 관점이, 

 

이종걸 : 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운동을 해나가는 맥락을 보면, 꼭 그들의 성소수자 정체성이 중심이 되었다기보다는 본인이 각자 가지고 있는 여러 운동의 방향과 지향들이 거기에 함께 있었던 거죠. 

 

터울 : 이번 인터뷰를 통해 찾아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어떻게 다른 단체들과 관계를 맺어오고 연대를 해왔는지에 대한 연원이거든요. 그런 연대의 힘이 아니었으면 성적 지향 차별금지조항이 명시된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은 물론이고,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이 명문화된 2012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또한 성사되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되어서요. 

 

이종걸 : 네, 그런데 그게 꼭 활동가 당사자들 중 일부가 성소수자여서 그랬다기보다는,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를 포함한 활동가들 각자가 지닌 운동의 지향들이 있었고, 각각의 지향들이 연대체들 안에서 성소수자 인권 이슈와 자연스레 얽혀나가는 과정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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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차별공동행동,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 (총 6회, 2010.6.30~11.5.)

 

 

 

터울 : 끝으로 2010년 이전에 친구사이가 앞서 언급한 연대체들과 관계맺으면서, 아무래도 친구사이가 기존의 내부 회원이나 종태원의 게이들을 만날 때와는 여러 모로 다른 경험을 겪으셨을 것 같거든요. 

 

이종걸 : 맞아요.

 

터울 : 그 때의 소회라든지, 새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셨을지, 

 

이종걸 : 제 개인적으로는, 제가 소위 '운동권' 출신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성소수자로서 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좀더 확장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연대가 상호간의 품앗이라는 느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시로서는.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제가 그 전에 운동의 언어에 대해 차분하게 책을 읽고 배우거나, 몇년간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거나 한 적은 없어서, 다른 단체를 만나고 연대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필요한 언어라고 해도, 더구나 그것을 친구사이 안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저로서는 일정한 한계를 느꼈던 것 같고.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 언어를 같이 만들어가고 연결해갔던 사람들, 기존에 이미 운동을 해왔던 성소수자들이 있었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꼭 성소수자 단체에 있거나 스스로를 커밍아웃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러니까 운동이 꼭 정체성 정치로 이야기되는 것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바가 실제로 어떤 운동의 언어나 이론과 맞닿았을 때 구현되는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활동이란 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 이슈와, 그것과 연결된 사회적인 불편함을 계속 건드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을 건드릴 때 사람들이 "왜 우리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걸 통해서 무언가를 고민하게 만들고,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그걸 통해서 인권 이슈에 대한 사고를 시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사회 운동의 중요한 의미이죠. 그걸 바탕에 두고 친구사이는 그런 부분에 대해 그래도 좀더 게이커뮤니티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걸 많이 고민하는 조직인 것 같아요. 그러니 단체마다 그런 것들에 대한 경험이나 인식, 그에 따른 전략이 조금씩 다른 거죠, 사실. 하지만 그런 입장차와 별개로 친구사이가 다른 운동 단체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갖고 있어야, 그 운동의 언어와 거기에 딸린 사회적인 것을 커뮤니티에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앞으로도 좀더 가져가야 할 부분인 것 같은데, 우리 이슈를 우리가 먼저 나서서 이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언어로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한데, 이걸 단순히 성소수자 당사자의 정체성과 입장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가령 어떤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그 대표성을 띠는 대선 후보가 나타났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그 후보는 성소수자 유권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단순히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나를 지지해달라, 이런 건 한계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내가 성소수자이기도 하지만 그런 내가 기후 정의나 기후 문제에 어떤 관심을 갖고 있고, 또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불평등 문제, 부동산 문제, 주거 문제, 돌봄의 문제 등에 대해 어떤 혜안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줘야 하고, 그래야 사회적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어떤 후보가 성소수자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설령 언론이 그렇게 조명하더라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내세우는 후보의 의미는 그런 것이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무슨 권리를 얻기 위해서 나서는지도 좀더 명확해질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걸 그 때 당시에 생각했다기보다는, 이후에 줄곧 경험해보면서 느끼게 된 것에 가까워요.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혐오와 차별에 맞대응하는 방식으로만, 우리가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으로만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현실이 너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제가 필요하고, 나아가 우리에게 무슨 권리가 필요한지, 그런 대안적인 것들을 좀더 이야기해야 했고, 그걸 배우려면 결국에는 좀더 확장된 사회운동 안에서 같이 뛰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나, 그랬었던 것 같아요. 

 

터울 : 미국 퀴어 이론에서 얘기하는 정체성 정치 비판이란 것이, 어떤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바로 그에게 정치의식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지인데, 그럼에도 그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 좋은 시작일 수는 있겠죠.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정체성에 맞는 정치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일 테고요. 그런 맥락에서 앞서 이야기해주신 연대체에서의 활동이, 한국 게이커뮤니티의 굉장히 중요한 전통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커밍아웃이 중요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커밍아웃을 하든 하지 않든 기존의 운동판 안에서 운동의 실무를 닦아나가고 연결을 만들어나가는, 그러면서 다른 운동의 여러 이슈에 대해 학습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같이 갔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게이커뮤니티의 운동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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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준비 서울모임,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 토론회 자료집』, 2010.7.7

 

 

 


5. 2010년 친구사이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합류
: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중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 추가 결정(2010.9.16.)

 

 

터울 :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얘기로 넘어갈게요. 경기도 및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제도적으로는 교육감 직선제 도입으로 인한 진보 교육감 당선 및 조례 주민발의제 도입에 힘입은 것이지만, 사회적·운동적으로는 운동사회의 끊임없는 노력과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2010년 7월 7일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가 발족될 때 연대단위를 보면 되게 범위가 큰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더불어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준비모임 단계이던 6월 22일 친구사이가 서울본부 발족 참여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그런 제안이 왔다는 것은 그 전의 인적·조직적 네트워크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요.

 

이종걸 : 아무래도 친구사이가 그 때 당시에 상근자를 두면서, 사무실 공간이 있는 채로 활동하는 몇 안되는 성소수자 단체였을 거예요, 지금보다 확실히 더. 그런 점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도 하고 그러니까, 제안하는 주체들이 친구사이를 고려했을 것 같고요. 그 제안에 대해 재경이형도 많이 고심을 하셨던 것 같고, 고민 끝에 결합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곳 현장에서 만나신 선생님과도 밀도있게 관계를 맺어나가셨거든요. 형이 그 안에서 본인의 역할을 찾기도 하시고, 어떻게 접근할지를 섬세하게 고려하시는 분이라, 그런 지점에서 서울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셨던 배경내 선생님이나, 어린이책시민연대에서 활동하셨던 여성 활동가분들과도 뜻이 잘 통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의 목표가 뭔지를 잘 파악하시고, 그것이 잘 소통이 되었기 때문에 현장 안에서 잘 활동하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굉장히 귀한 만남이고 초대였던 거군요. 

 

이종걸 : 아무래도 사실 조직과 조직이 만나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 안에서 서로의 신뢰감나 경험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재경이형이 보기에 친구사이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좀더 취약한 상황에 있던 그룹이라고 줄곧 생각하셨고, 그 그룹 중의 하나가 청소년 성소수자였던 거죠.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실마리를 학생인권조례 운동과 논의 과정에서 확인하셨던 것 같아요. 

 

터울 : 말씀해주신 대로 재경이형이 이후 서울본부의 회의에 계속 배석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또 하나의 친구사이 연대사업의 일종으로 추진된 일이었을 것 같아요. 물론 지보이스 차원에서도 연대공연을 하셨겠지만, 연대체의 회의석상에 지속적으로 참석하셨던 건 대표가 되고 나서 처음 겪어보셨던 일일 것 같은데, 그 때 기억이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박재경 : 지금도 친구사이가 연대활동을 너무 많이 하고 있지만, 그 때도 연대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고, 되레 연대사업 외에 다른 사업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너무 고민스러울 때도 많았어요. 아무튼 당시 내부 비판 중의 하나로 대표가 연대사업을 하나 맡아야 된다는 내용도 있었고, 기존에 가람이나 기즈베(이종걸)이나, 열심히 하는 유능한 활동가들이 연대사업을 이미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이걸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보다는,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한번 참여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회의 처음 갔을 땐 마님(박재경님의 파트너, 2000년 친구사이 대표 신정한님-편집자 주)이랑 같이 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정운동 서울본부는 배경내 선생님이 주축이 되었었는데, 배경내 선생님도 그 전에 친구사이랑 인연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와서 강의해주신 적도 있었고, 마님도 알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접하게 됐고, 서울본부가 이런 이상을 가지고 있는 걸 확인했는데 그 이상이 되게 좋았어요. 그 이상이 성공할 거냐 실패할 거냐의 판단이나 전망보다는 그게 그냥 좋아보였어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려고 하고, 이런 모습들이 되게 좋았고. 그렇게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 출범식 할 때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참여하게 됐던 것 같아요. 

 

터울 : 처음에 마님이랑 회의에 같이 가셨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네요. 마님이랑은 언제 처음 사귀셨어요?

 

박재경 : 친구사이 나와서 그해 5월 쯤에 사귀기 시작했어요. 술먹다 같이 자버려서. (웃음) 술이 웬수지 뭐.  

 

터울 : (웃음) 처음 연대체 회의석상에 앉으셨을 때의 느낌을 좀더 여쭙고 싶어요.

 

박재경 : 저보다는 거기에 계셨던 분들의 어떤 목마름이 느껴졌어요. 청소년 단체 활동가나 청소년 당사자들, 그분들의 취지에 함께 하는 교사분들과 법조인분들이 계셨는데, 청소년 인권 수준이 현재도 바닥이지만 그 때는 더 처참했고, 지금에 비해 그 때는 그것에 대한 인식조차 잘 안되던 시기였고, 이후에 더 많이 논쟁되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의제가 드러나게 되었지 그 때는 청소년 인권 의제가 어딘가 여전히 좀 생소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회의석상에는 각자가 가진 의견이 뜨거웠던 분들이 그 자리에 모였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게이로서 공식석상에 참석했을 때의 불편함이나 어색함 같은 걸 거의 느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뜨거운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향해서 그걸 이루어야겠다는 꿈들이 많고. 그리고 처음에 나는 그냥 마님이랑 있으니까 편하고, 그런 거였죠. 

 

터울 : 아무래도 친구사이 내에서의 회의랑은 느낌이 달랐을 것 같거든요. 

 

박재경 : 참석하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얘기하고, 원론적인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었죠. 그리고 앞에서 중재하시는 분들이 역할을 되게 잘 하시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터울 : 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면, 게이커뮤니티에만 있다가 그런 연대체에 딱 나갔을 때 느낌이 되게 각별했거든요. 한편으론 낯설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환대받는 느낌도 있었고. 

 

박재경 : 환대…라기 보다는, (웃음) 그냥 서로 평등하게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 얘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나는 어쨌든 대표였기 때문에, 인권단체의 대표이긴 하지만 하나의 조직을 꾸려야 되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표를 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항상 단체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는 활동을 해나가면서, 그걸 해나갈 때 기본과 전제가 되는 탄탄한 바탕은 결국 돈과 사람인 거잖아요. 그래서 돈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단체를 꾸릴 때. 돈들이 어떻게 단체로 올 것이고 우리가 그걸 어떻게 지출할 것이고, 대표 전에 총무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들을 자연히 하게 됐어요. 지보이스 할 때도 그랬고 친구사이 총무할 때도 그랬고, 재정적으로 많이 열악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특히 친구사이같은 경우는 제가 처음 총무를 맡았을 때 깜짝 놀랐던 건, 한달에 상근간사 월급이 백만원도 안되고 80만원 정도였을 때예요. 반상근하고 그랬을 때거든요. 거기서 월급을 12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돈이 없으니 못 올리는 거예요. 그런 시기였어요. CMS(Cash Management Service, 후원금 자동출금 서비스) 내역을 뽑아보면 한달에 120~150만원 뽑히는 정도, 그 때 총무를 맡았거든요. 그러니까 돈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 것이냐, 이게 대표할 때 큰 과제였던 것 같아요. 인권도 인권이지만. 그런 관점에서 청소년 사업을 봤을 때, 이건 우리 단체가 그걸 한다고 했을 때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고, 따라서 후원을 할 것 같은 사업이라는 생각이나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렇죠, 지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상근간사 수나 후원 규모가 확 불어나는 것만 봐도, 대중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는 후원으로 직결되기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운 부분이 있죠. 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단체 분담금은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연대체는 분담금이 있잖아요. 

 

박재경 : 그렇게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어요. 당시에 3~5만원 했으니까. 가끔 안 내기도 하고, 밀렸다 내기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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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완, 「서울학생인권조례에 관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의견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서울학생인권조례안 마련을 위한 내부 집중 워크숍 자료집』, 2010.7.26.

 


 

 

터울 : 2010년 9월 16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때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원용해 성적 지향 차별금지조항을 포함한 조례안이 전국 최초로 통과되었었죠. 그처럼 성적 지향 차별금지조항은 2001년에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있던 거였는데, 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은 2007년 1월 28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초안에 들어가 있다가 결국 제정이 안됐었고, 그래서 2012년의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실은 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이 최초로 법규에 명시된 사례거든요. 그리고 그 조항이 제정운동 내의 2010년 9월 16일 회의에서 확정되었던 걸로 확인되어서, 이걸 기록으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때의 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 삽입에는 아무래도 앞서 언급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를 비롯해, 그간 트랜스젠더 및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노력과 문제의식이 연결돼있는 것이겠죠?

 

이종걸 : 네, 아무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그리고 당시에도 트랜스젠더 이슈는 활동가들 안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어요. 해외에서 이미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즉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과 관련한 흐름들을 만들기 시작했었던 맥락도 있었고요. 그러다보니 운동 안에서도 그 점이 중요하게 인지되고 있었고, 자연히 성적 지향 차별금지조항만 법조항에 명시는 것이 아쉬웠던 게 있었고, 그런 필요성에 내부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2010년 7월 26일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 연 서울학생인권조례 조례안 마련을 위한 첫 워크샵에서 재경이형이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의 필요성을 다룬 발제를 진행하신 걸로 확인되는데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문건은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스탭게시판을 보니까 막상 발제 당시에는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못하셔서 8월 13일 회의 때 재차 강조하셨던 에피소드가 있었더라고요. 이 때의 기억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박재경 : 그 땐 기본도 없었죠, 제가. (웃음) 그러니까 기본적인 건 알아야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내용이 성적 지향 차별금지조항에 다 포함되는 건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된 거예요, 그게 다르다는 걸. 워크샵 발제 당시에는 정확히 몰랐던 거죠.

 

사실 이런 법규 조항을 만드는 과정이 익숙하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그냥 우리가 흔히 갖는 감각 있잖아요. 우리는 평등해야 돼, 이런 수준으로만 접근했던 것 같고. 그래서 스탭게시판 보셨으면 알겠지만 처음에 처참한 수준의 제안서를 올렸는데, 가람이가 난리가 난 거죠.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고. (웃음) 기본적으로 이런 건 활동가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고, 꼭 필요한 건 이거고, 그런 과정 속에서 좀 조정이 된 것 같아요. 당시 논의되던 차별금지법안과 같은 수준의 차별금지조항이 꼭 들어가야 되고, 거기에 실천적인 조례 시행을 위해 추가된 부분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정리가 된 거죠.

 

터울 : 워크샵 발제문을 처음 내기 전에 친구사이 운영위 내에서 그런 심의 과정이 있었던 거군요.

 

박재경 : 네, 그리고 다행히 그런 부분을 제안했을 때, 운동본부 측에서 사실 다 수용을 해준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더 격렬한 논의를 하거나, 안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게 아니라 포괄적으로 수용을 해줬기 때문에. 

 

터울 : 어떤 의미에서는 활동가가 길러지고 이슈에 대해 학습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 내용을 언급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친구사이가 인권단체로서 처음부터 교양 넘치는 사람이 들어와서 활동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역사를 보면 그런 인권감수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고 사람들과 연대활동을 만나가면서 하나하나 구성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걸 확인할 수 있더라고요. 형도 그런 과정을 겪으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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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청구인 명부 양식 (2010.10.28.)

 

 

 


6. 2010~2011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의 조례안 주민발의 서명운동 

 

 

터울 :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 주민발의 서명 조직을 시작한 것이 2010년 10월 27일이고, 1차 마감이 이듬해 5월 10일, 추가 서명운동 최종 마감이 7월 5일까지 이어졌는데요. 이 서명 조직 과정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가령 친구사이에서 2010년 11월 19일 성소수자 대학 동아리 간담회도 진행되었던데요. 이건 정말 한두 사람의 활동가가 아니라 그야말로 조직력이 필요한 거고, 물론 CMS 후원받는 것도 조직운동이지만, 이 주민발의 서명운동도 조직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하셨는지 궁금해요.

 

박재경 : 우선 조직 내부의 서명운동을 먼저 얘기하자면, 친구사이는 어쨌든 회원 조직이라서 단체 내부에서 나올 수 있는 조직 역량이 있었고, 정기모임을 매달 하기 때문에 모일 수 있는 기회나 빈도도 있었어요. 실제로 친구사이가 정기모임 끝나고 나서 사무실 근처의 게이바에 가서 홍보물을 나눠준다든지, 캠페인 활동을 한다든지 그런 것들은 늘상 해왔던 거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활용했던 것 같아요. 물론 게이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서나 가서 만나기는 힘들잖아요. 그랬을 때 토요일에 정기모임을 하기 때문에 주변 게이업소들을 저희가 돌면서 서명을 계속 받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친구사이 운영진이나 회원들 중에 관심있는 분들, 그런 분들과도 같이 여기저기 가서 서명을 받기도 하고, 큰 행사 있을 때.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꾸준히 하려고 했었어요. 

 

서명운동 받을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게이바에 갔을 때 그냥 서명받기는 뭐하니까 물티슈라도 주자 해서 드렸을 때, 너무 좋아하는 바텀들을 봤고, (웃음) 

 

터울 : 유용하죠. (웃음) 

 

박재경 : 아주 유용하게 쓰겠다며, 서명보다는 그런 거에 관심이 많고. (웃음) 

 

터울 : 저도 친구사이 정기모임 처음 나와서 인상적이었던 건, 자연스럽게 정기모임 끝나고 종로의 게이업소들에 캠페인을 나가는 거였거든요. 지금도 죽 이어오고 있는 전통인데, 그 때도 그런 맥락에서 서명운동 조직이 그리 낯설지는 않은 활동이었던 거군요.

 

박재경 : 그리고 그래야 후원금이 나오니까요. 이렇게라도 알려야 한다, 그런 게 있었던 거죠.

 

터울 : 당시 서명 폼을 확인해보니까 개인정보를 자세히 요구하더라고요, 주민등록번호도 써야 되고. 

 

이종걸 : 이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었죠. 물론 그 때 당시에도 개인정보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민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적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터울 : 그래서 실제로 나중에 무효 서명지가 1만여장이 발견되어서 추가 서명이 진행되었었죠.

 

이종걸 : 네, 그랬었죠. 사실 그래서 친구사이가 이 서명운동 유효 서명인수의 일부 비율을 책임질 수 있느냐, 그렇게까지는 좀 부담이 되었던 것 같아요. 대신 친구사이로서도 이런 캠페인의 경험을 쉽지 않지만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친구사이가 그 때 당시 명동·여의도공원·서울어린이대공원·서울광장·조계사·북인사마당 등지에서 서명 캠페인을 했었는데, 저는 그중 3~4군데에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내부 조직원에게 서명을 받기보다는 외부 캠페인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것 같아요. 그 때 회원들 중에서도 청소년 의제에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좀더 활발히 참여했었어요. 기윤이나 샌더나, 성민이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이 현장에 와서 도와주고.

 

사실 서명운동 단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어떤 건지를 이야기할 때 단순하게 설명해야 서명 받기가 쉬워서, 제 개인적으로는 서명 받는 것 자체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 때 당시만 해도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이 주요 쟁점이 된 시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참가하기 수월했던 것도 있었던 거죠. 오히려 거꾸로 우리가 이걸 왜 꼭 해야 하는지, 이런 내적 동력을 북돋기 위해 회원들에게 이슈에 대한 설명을 해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제정운동 서울본부 안에서 운동을 진행할 때 우리가 중심이 되었다기보다는 우리도 같이 연대단위로서 참여하고 힘을 보태는 것 정도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터울 : 외부 서명운동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좀더 여쭙고 싶어요.

 

박재경 : 2010년 12월 4일 명동에서 서명운동했을 때는, 그 때가 겨울이었는데 눈이 날리고 굉장히 추운 날이었어요. 거기에 호모포비아 기독교분들이 늘상 자리를 지키면서 방송을 하셨는데, 그분들도 추우니까, 그 때는 학생인권조례가 이후처럼 막 언론의 이슈가 되지는 않았던 때여서, 우리 서명운동의 내용이 뭔지는 몰랐던 거예요, 그분들이. 그래서 서명운동을 받고 하니까 그분들이 뭔가 동지의식을 느꼈나봐요. 이렇게 우리도 큰 어떤 공적인 목표를 위해 추운 거리에 나온 것처럼, 여기도 젊은 애들이 나와서 서명받고 하는 게 안쓰러워보였는지, 고생하네, 너무 훌륭하다 그러고. (웃음) 커피라도 주려고 해서, 우리는 아유 아니예요, 그러고. 우리는 아니까, 저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를. (웃음) 이런 경험들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내용을 주장하는지 알면 이렇게 대하지 못할 텐데,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터울 : 너무 땍땍하게 서계셨던 거 아녜요? 게이 티가 안 나는 채로, (웃음)

 

박재경 : 아니예요. (웃음)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3월 6일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서명운동했던 기억도 나고. 그리고 또 기억나는 중요한 사건이, 조직된 서명인수가 초반에는 모자랐어요. 그래서 난리가 났었는데, 그 유효 서명인수가 채워진 날이 하필 2011년 5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정말 부처님이 오셨다고, (웃음) 그날 조계사에서 서명운동을 받았는데, 제정운동 서울본부에서 우리가 서명인수를 채우려면 이날밖에 없다, 이날이 우리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봐서 그날 활동가들을 다 모은 거예요. 조계사 경내가 되게 넓잖아요. 그래서 이쪽 저쪽 다 포진해서 다들 서명을 받으려고 혈안이 돼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서명인수를 채우고 이틀 뒤에 1차 주민발의 서명운동이 마감됐거든요. 그래서 그 때 정말 부처님이 오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어쨌든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친구사이는 기본적으로 활동가 조직이 아니고 일반 회원들이, 자기 직업과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 가끔 자기 짬나는 시간에 모여서 의미있는 일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는 그런 단체이기 때문에, 그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조금 열심히 했던, 그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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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차별 없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관련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 의견 공개질의」, 2012.1.7.


 

 

 

 

7. 2011년 9월 8일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조직

 

 

터울 : 2011년 9월 8일 조직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얘기로 넘어갈 게요. 조례가 발의되고 난 다음에, 본격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가 제정운동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게 성소수자 공동행동 조직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성소수자 대책회의라는 가칭으로 활동했다가 2011년 10월 4일 회의에서 위 명칭이 확정된 것으로 확인되고요. 9월 7일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초안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이 삭제된 채로 발표되면서 그걸 계기로 공동행동이 조직되었고, 그러다보니 아까 서명운동 단계에서 성소수자가 이슈가 덜 되었던 것이 180도 바뀌어서 반대로 주요 이슈로 떠오르게 된 상황이었는데요. 인상깊었던 건 9월 8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조례 공청회가 개최된 바로 그날에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조직된 것이었어요. 이렇게 신속하게 연대체를 조직해 이슈에 대응할 수 있었던 데 대한 배경이 궁금하더라고요. 이 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죠.

 

박재경 : 그 때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큰 역할을 했어요. 무지개행동 활동가 그룹이 있었고, 이 그룹들이 계속해서 활동의 방향이라든가, 각 단체의 운영에서 어려운 점을 논의하고, 뒷풀이하면서 웃으며 서로 놀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보니까. 

 

중요한 건,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현안에 대해서 빨리 모인 편이에요. 그전까지 저는 무지개행동에 대해 좀 부정적이었거든요, 그냥 엘리트 활동가들 사교모임 같아보였고. 그런데 학생인권조례 운동하면서, 그런 연대체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확 모였었던 거죠. 그게 없었으면 한명 한명 얘기하고 조직해야 했을 텐데, 늘상 현안을 공유하고 거기에 대해 당장의 해답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관계를 꾸준히 가져가는 활동가 그룹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현안이 있을 때 와당탕 모이고 작전을 짤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서로간에 얘기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신뢰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의 특징과 개성,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훅 모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운동을 보면 거기에 리더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어떤 형태로든 리더들이 있고, 아주 핵심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 주변에 포진되어있는 사람들간의 위계가 있기 마련인데, 물론 무지개행동에도 그게 있기는 하겠으나 제가 느끼기로는, 저는 활동가는 아니기 때문에 한발 떨어져서 보면,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조금 더 그런 면에서 평등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우뚝 선 리더보다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해지고, 그 친밀함을 바탕으로 같이 모이는 형태였기 때문에. 뒤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그랬기 때문에 서울시의회 점거농성 때도 활동가 외에 LGBT 대중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게, 그런 친한 연대감? 성소수자 사이의 어떤 친밀한 의식? 이런 것들이 있는 분들이 많이 모이게 됐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터울 : 당사자운동이나 당사자 조직의 특징 같기도 해요. 활동가와 회원의 경계가 아주 뚜렷하지는 않은 특징들이 있는데, 어쨌든 공동행동의 신속한 조직은 무지개행동의 힘이라고 보시는 거군요.

 

박재경 : 네, 무지개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된 거죠. 그렇게 빨리 모일 지도 몰랐어요. 

 

이종걸 :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그 전부터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문제이고 시급하게 대응해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주민발의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 지향이 논쟁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게 무너지면 안된다는 판단이 활동가들 사이에 있었고요. 그런 배경 속에 9월 초에 활동가들이 빨리 모이게 되었던 거죠. 그리고 9월 8일 공청회에 참석한 많은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혐오세력들의 발언에 위축되는 상황도 있었어요. 저마다 그 상황을 버티려고 노력했었고.

 

터울 : 공청회 때 혐오세력들이 많이 왔었어요?

 

이종걸 : 네, 많이 왔었어요. 성적 지향과 임신·출산 차별금지조항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었어요. 그들의 조직적 배경이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2010년 그 해에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해서도 외부적으로 혐오세력의 반동이 컸었거든요. 그리고 2011년 초반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출범하고, 거기에 각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가 몰입돼있던 부분도 있어서, 그런 흐름들 속에서 공청회 현장을 봤을 때 거기에 모인 활동가들이 여기에 운동적 역량을 결집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렇게 주목이 되었다는 건, 어쨌든 그만큼 우리 의제가 가시화되었다는 얘기이겠죠. 

 

이종걸 :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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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성적소수자 인권 기초현황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05.


(연구원 : 나루·케이(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정정훈(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조여울(여성주의 저널 일다),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 2006.


(기획단 : 김일란·한영희(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루인·한무지(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유정민석·최현숙(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타리(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과정)

▲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 기획단, 2007.


(기획단 : 고유미(사회학 연구자), 박기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진우(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한영희(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한채윤(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14.


(연구원 : 장서연·김정혜(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현경·나영정·정현희·박한희(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류민희·조혜인·한가람(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8. 2011년 11월 15일 학교 내 성적소수자 차별 사례 모음집 발간

 

 

터울 : 성소수자 공동행동이 조직되면서 친구사이 스탭게시판도 불이 나기 시작하던데요.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기자회견이나 활동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무슨 차별을 받는지에 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내놓아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죠. 그래서 각 단체가 사례를 수집해서 그걸 바탕으로 2011년 11월에 『성적소수자 학교 내 차별사례모음집』이 발간되게 되는데요. 

 

제가 느끼기로는, 이를테면 2005년에 일다랑 KSCRC랑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등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사업으로 진행했던 것이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성적소수자 인권 기초현황조사』였고, 이 때 성소수자 피해의 사례가 광범위하게 수합되는데요. 그런데 거기에 친구사이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조사의 주축이 되었던 건 레즈비언 중심의 단체였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2011년에도 9월 즈음에 피해 사례 수집 얘기가 나왔을 때 레즈비언의 사례가 먼저 나오고 게이의 사례들이 추후에 모아지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레즈비언 인권운동은 여성운동과 연이 깊고, 여성운동은 젠더 기반 폭력(GBV)에 대해 대응하고 그 피해를 운동적 맥락으로 의제화하는 것에 익숙한 면이 있는데, 그에 비해 게이커뮤니티는 우리의 자긍심을 먼저 내세우고, 우리의 피해를 입으로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다소 있는 것 같거든요. 물론 상투적으로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거고, 따지고 보면 게이커뮤니티의 많은 문화나 전승들이 실은 다 피해에서 온 것이지만요. 

 

나아가 친구사이 안에서 피해를 포함한 상담 사례는 단체 발족 이래 계속 축적되고 있었고, 1994년부터의 단체 내 상담사례가 2011년 9~11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전부 수합되어 주제별로 분류·정리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더라고요. 이렇게 차별과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에 부응하는 자료를 생산해야 했을 때, 활동가나 당사자로서 여러 감회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종걸 : 이런 상황이 생길 때, 차별금지법 때도 그랬지만, 도대체 성소수자 차별은 어떤 걸까요-라는 질문을 언론이 물어보고, 

 

터울 : 지금도 그렇잖아요.

 

이종걸 : 네, 그리고 그걸 너무나 드라마틱한 형태로, 또는 사람들에게 바로 딱 인식 가능하게끔 하는 사례를 요청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요구들을 어려워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터울 : 자존심 상하는 거고,

 

이종걸 : 네, 그 자체만으로 자존심 상하는 게 있겠고, 또는 어디까지 얘기해야 되는 거냐, 가령 더 극심한 사례를 들어야 하는 거냐, 이런 문제들. 그래서 어느 특정한 사례에 집중히기보다는, 갖가지 다양한 피해들에 대해 집중하자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차별의 양상이 어떤지를 드러내보고도 싶었는데, 사실 그런 2차적 분석까지 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사이로서도 우선은 사례를 모으자 정도였던 거고, 그 내용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떤 게 문제라고 말하기보다는 어떤 사례가 있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잘 알리는 것이 중심이었던 것 같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래도 상담을 해온 단위가 있으니까 우선 그것부터 모아보고 정리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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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성적소수자 학교 내 차별사례모음집』, 2011.11.15.​

 

 

 

터울 : 그래도 차별사례 모음집에 친구사이 상담 사례를 중심으로 게이커뮤니티 관련 사례들이 꽤 들어갔던 것 같아요. 이런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시면서, 형이 개인적으로 어떤 걸 느끼셨는지가 궁금해요. 피해를 이야기해야만 운동적으로 유의미해지는 상황에 대한 비감함이 있잖아요. 지금도 얼마간은 그렇고.

 

이종걸 : 그래도 우선은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었던 생각인데, 결국 이건 우리가 해야 할 몫이고 우리가 정리해야 되는 부분인데, 어쨌든 사례가 있어야 들이밀 게 있으니까, 특히나 우리가 이 제도권 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걸 이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으니, 그래도 구체적으로 피해의 양상을 사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게 있었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물론 나중에 조례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조례안이 통과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이 조례안은 너무도 선언적인 의미가 강하고 기본적인 내용이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킬까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를 담고 있는 건 아니어서, 이 조례를 바탕으로 우리의 피해를 둘러싼 현실을 바꾸고 지금의 정치 현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피해를 포함한 우리의 삶을 잘 정리하고, 그것을 잘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레즈비언 중심의 단체가 한발 먼저 나아갔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게이커뮤니티에서 피해의 사실과 서사는 유독 HIV/AIDS 이슈에 집결돼 있었던 것 같거든요. 물론 게이커뮤니티의 이슈와 HIV/AIDS 이슈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게이커뮤니티의 자긍심이라는 것이 피해를 외면한 자긍심이 아니라 피해를 인식하고 난 이후의 자긍심이어야 할 필요가 이 때 환기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실은 종로·이태원에 오는 게이들이 바깥 이성애 사회에서의 피해를 피해서 여기에 온 거잖아요. 거기서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다시 상기하게끔 하는 문제에 대해 이물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들이 그걸 몰라서 여기에 모인 것도 아닌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단체의 입장에서는 그런 피해를 재인식하게 만들어야 되는 과제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 운동단체 활동가의 입장이든 게이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든 체감하셨던 게 있지 않았을까 해서 여쭤본 질문이었어요. 

 

박재경 : 그런데 막상 그 때는 우리로선 이런 작업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했어요. 이런 비슷한 상황들이 이후로 계속 반복되었다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그 때는 처음에 가까웠고, 눈앞에 학생인권조례란 과제가 있고 잘하면 통과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게 너무 직접적인 과제였기 때문에 후다닥 해야 되는 것에 가까웠죠. 

 

그리고 차별사례들을 보고 새삼 놀랐던 게, 단체들이 빠른 시간 내에 그 작업을 해내기도 했고, 사례들 중에 굉장히 충격적인 것들도 많이 있고. 그리고 차별사례모음집의 사례 중 일부 내용을 희일이형이 영화 <야간비행>(2014)의 에피소드로 활용했던 기억도 있어요. 어쨌든 친구사이 외에도 각 단체 내에서 상담게시판이 운영되었기 때문에 그걸 정리해내는 게 가능했고, 다만 누군가 그걸 정리할 생각을 안했던 건데, 당시 당면한 필요성 때문에 그걸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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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左) 강병철·하경희, 「청소년 동성애자의 동성애 관련 특성이 자살 위험성에 미치는 영향」, 『청소년학연구』 12(3), 한국청소년학회, 2005.  
▲ (中) 강병철·하경희, 「청소년 동성애자의 반동성애 폭력경험과 심리사회적 특성」, 『아동과 권리』 10(3), 한국아동권리학회, 2006.  
▲ (右) 강병철·하경희, 「청소년 동성애자의 성정체성 드러내기가 자살위험성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관한 연구」, 『사회복지연구』 35, 한국사회복지연구회, 2007.  

 

 

 

 

9. 2010년 청소년 사회적 욕구조사 공약과 2014년의 한국 LGBTI 사회적 욕구조사 발간

 

 

터울 : 대체 성소수자가 무슨 차별을 받느냐는 얘기는 지금도 계속 들려오고 요구받는 질문인데요, 어쨌든 우리의 사례와 피해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걸 다룬 연구와 데이터가 필요해지는 것 같아요. 각 단체의 사례 수집을 넘어 그 전까지 활용된 성소수자 관련 연구물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박재경 : 그 때만 해도 워낙 연구 기반 데이터들이 없었어요. 그 전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적 낙인 인식이 성소수자의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으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은 삼육보건대학교 아동보육과 강병철 교수님이 그 전에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연구를 3편 내셨는데, 그게 좀 큰 규모의 조사였었고, 당시로선 그것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관련 근거가 풍부하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우리는 그 논문 3개를 계속 우려먹었던 거죠. 

 

터울 : 말씀하셨던 운동에서의 데이터의 필요성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2010년 친구사이에 대표로 출마하실 때 다음의 공약이 있더라고요. "청소년의 사회적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청소년 성소수자 기초 환경 및 실태조사 실시라는 공약을 발표하셨는데, 이것이 그 해에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결국 2012년부터 진행되어 2014년 결과가 발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를 통해 일반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을 대상으로 그 구상이 확대 실시된 측면이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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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2014.

 

 

 

박재경 : 대표 공약은 아마 지금쯤 사람들이 다 잊어먹었을 것 같고. (웃음)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때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운동에 대한 근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를 대상으로 한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고민들을 하게 됐고, 그런 고민을 술자리에서 가람이랑 둘이 꽐라돼서 '왜 없는 거니? 우리 그런 거 있어야 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 가람이는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LAW)에서 활동해서 연구자 그룹이 있었기 때문에, 연구회에 관련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이러이런 걸 했으면 좋겠다고 연구회 측에 얘기를 했죠.

 

그런데 사실 조사 사업에는 돈이 들잖아요. 그럼 돈을 어떻게 마련할 거냐, 돈이 어느 정도 있으면 조사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럼 그 돈을 해결할 수 있으니 하자, 라고 해서 하게 됐죠. 그래서 개인에게 지정기부도 받고, 친구사이 예산도 꽤 많이 들어갔어요, 이 사업에. 그리고 2012년 당시 친구사이 운영위원들이 단체의 20주년이 되는 2014년의 사업을, 그냥 기념식을 하고 우리 단체 너무 좋아요, 이런 식의 행사를 하기보다는, 이왕 돈 들어가는 행사를 할 거면 좀 남는 걸 하자,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전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그렇게 운영위원분들이 생각을 해주셨기 때문에, 

 

터울 : 아, 그 욕구조사에 친구사이 20주년의 명의가 실렸던 거군요.

 

박재경 : 네, 겸사겸사 맞은 거죠. 조사 사업은 개인 기부금만으로는 할 수 없고 단체 예산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 때 당시 운영위원들이 그렇게 결단해주신 거죠. 물론 외부로부터 운영위원들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웃음) 커뮤니티를 생각하는 마음은 다른 단체 활동가들보다 더 뜨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이 좀더 구체적이고. 그래서 이왕이면 단체 20주년을, 또 2014년에 조사 결과가 나오게 되니까 그 때를 기념해서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친구사이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게 나오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조사 결과가 잘 쓰일 거라고 생각을 한 거죠.

 

터울 : 사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는 별도의 인터뷰가 필요한 사안이라서 자세히는 여쭙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근거로 삼아 하게 된 사업을 하나 정도 예를 들어주신다면, 

 

박재경 : 그게 성소수자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이죠. 사회적 욕구조사 진행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중간발표를 한 거예요. 성미산마을에 어떤 센터 건물이 있고 거기 지하 강의실에서 발표를 하고, 그 때 강병철 교수님도 오셨어요. 그리고 자살예방활동의 전문가로 활동하시는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지영 교수님도 오시고. 그래서 이 데이터를 가지고 논의가 오가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 때 인상깊었던 건 LGBTI 관련 욕구조사에서 나온 다양한 차별의 증거를 어떻게 해석할 거냐였어요. 어떤 활동가 분은 이건 계급으로 인한 차별이다, 성소수자로 인한 차별이 아니고, 이렇게 제안하시기도 했는데,

 

그 때 박지영 교수님이 조사 중에 자살 관련 문항의 답변 결과를 보시고 너무 놀라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게 심할 거라고는 거의 대부분이 알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이 청소년 시기에 자살 생각을 심각하게 했던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당연한 거 아냐, 처음엔 그런 생각이었는데, 그 전문가분이 너무 깜짝 놀라신 거예요. 이럴 수는 없다고, 이건 연구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전문적인 연구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를 잘못 조사한 것 같고, 어떤 집단도 자살 시도 경험 및 자살 사례 인지 비율이 이렇게 높게 나올 수는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리고 그 때 나도 그 교수님의 반응을 보고 놀랐죠. 이상하다, 다 높은데, 왜 그게 놀라운 거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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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 보고서』, 2014, 312쪽. (강조-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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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용환·이상영, 「우리나라의 자살급증원인과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과제」, 『보건복지포럼』 20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3.6, 12쪽. (강조-편집자)

 

 


강병철 교수님은 책으로만 봤고 실제로는 그 때 처음 뵈었었고, 그 자리에서도 여러 가지 제언이나 자문을 해주셨는데, 뒷풀이 자리 때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어요. 덕분에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할 수 있었다고. 당신이 연구해놓은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그 근거자료를 운동 과정에서 이렇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드렸을 때 교수님이 되게 행복하셨어요. 그리고 더 많은 근거자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이 사업도 하게 된 거다, 그렇게 설명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 이걸 이렇게 그냥 둘 거냐, 아니면 뭔가 해야 되느냐, 그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 때 재우형이 그런 제안을 했어요. EBS 방송을 보니 자살예방 관련 프로그램을 하더라, 그럼 그런 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걸 같이 보자, 그래서 재우형네 집에 모여서 같이 그 프로그램을 봤어요. 그러면서 마음연결이 시작된 거예요. 

 

터울 : 그렇죠, 사업을 하나 하려면 근거자료가 되는 데이터가 필요한 법이고, 물론 그 전의 전문연구자분들의 조사 작업이 있지만 특히 이 사회적 욕구조사 사업은 커뮤니티 단체 안에서 커뮤니티에 대한 조사를 해냈다는 게 뜻깊은 것 같아요. 그 이후에도 친구사이는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와 한국 성인 LGB를 대상으로 한 건강연구를 위한 조사사업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고요. 커뮤니티 스스로 커뮤니티를 조사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고 평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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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 한국 성인 성소수자(LGB) 건강 연구(설문조사)」, 2016.11.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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