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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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흘리는 연습" #5]
그(들)이 흘리는 갈래_친구사이 기획전 《흘리는 연습》
| 전시회 감상평을 기고해주신 오어진 님은 시각예술 연구자입니다. 종교의 믿음과 의례, 이를 토대로 발생하는 시각적 현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를 알게 된 건 학교에 입학해서였다. 당시 신실한 개신교 청년이었던 나는 퀴어 정체성을 지닌 그가 부담스러웠다. 정확히는 낯설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만나는 퀴어,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 내가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비롯된 언어들.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당시 주말마다 다니던 교회는 성경 속 원죄 개념을 토대로 이들에 대해 교육하였고, 교인들과 목사님이 말하는 그들의 '죄악'은 선명하고 따스하게 다가오던 신의 계율과 체험, 교회의 언어와 감각 안에서 충(衝)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그의 삶에 동조하는 마음이 이내 죄를 저질러 따스한 빛의 바깥으로 쫓겨나는 태초(太初)의 이야기로 흘러갈까 두렵기도 하였다. 여기에 그의 밝고 상냥한(?) 성격이 더해져 더욱 그러하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복잡하게 공존하는 수많은 삶을 떠올릴 때, 그를 통한 만남과 풍경의 전환은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힘들 때 기도해 줄 수 있냐는 친구의 말에, 불법 철거 현장에서 날밤을 새우던 그들의 모습에, 친구를 따라 서로를 환대하는 모임에 가는 경험에, 그리고 그 곳에서 마주한 주일예배와 같은 따스함에. 그들이 배제된 세계에서 존재의 삶을 피상적인 언어로 훑는 일이, 서로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실재를 대면하는 일로 전환된다. 이는 언어적 강박에 휩싸여 보지 못한 실재를 눈앞에서 직면한 뒤, 얼마간의 충격을 소화하고 서로가 동행할 수 있는 경로를 재고하는 일에 가깝다. 그 길 위에 서 있을 때, 이전의 사고와 두려움을 떠올리며 남몰래 손을 모아 고해(告解)하던 부끄러운 기억도, 미친 듯이 텍스트에 집착하여 답을 찾던 기억도, 언젠가 다른 길로 도망갈지라도 다시금 나의 장(場) 외부, 때로는 나에게 위협적으로 보이는 낯선 곳을 응시할 수 있으리라는 따스한 예언이 되어 돌아온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획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아카이브 전시《흘리는 연습》는 나에게 내가 놓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아카이브 전시에서 보존된 기록과 이미지는 과거 내가 보지 못한 세계에서 나와 함께 살아오던 존재를 지켜낸 이들의 삶을 지표한다. 전시장에는 30여 년간 '친구사이'가 모아온 글과 활동에 대한 기록이 나열되어 있다. 그렇게 10일여간 공개된 전시의 자료들 속에는 내가 모르던 세계의 저 먼 곳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삶의 기록이 펼쳐져 있다.

전시가 이를 품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설치 작품 〈글레이즈드 사각 언니〉는 전시장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거미처럼 기다란 다리로 뿌리를 내린 채 삶에 대한 개별자들의 이야기를 소리 내 읊는다. 뱉는 몸은 동일하나, 목소리와 말의 내용은 상이하니 목소리가 향하는 향방 역시 복수(複數)적이다. 목소리 뒤로는 띄어진 채 산재한 기다란 파이프 조각, 〈어둑서니〉 연작은 각각의 몸체에 이름 모를 형상과 장면을 몸에 새기고 있다. 드문드문 띄어져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이들의 동세는 자신의 여백을 스쳐 또 다른 〈어둑서니〉를 찾아 돌아다니게 관객을 유도한다. 그 중 하나의 몸체는 위에는 출판을 통해 존재를 전하는 이들의 인터뷰 〈기록 너머의 연대〉가 흘러나오며, 퀴어 출판을 수행하는 이들의 삶과 그 주변부의 사유를 나지막히 흘려 보낸다. 이들의 행적은 남성 퀴어가 아님에도 '친구사이'를 통해 위로를 받는 시기가 있다는 인터뷰어의 말과 포개어져 다가온다. 〈아카이브 테이블, 32편의 글〉은 관객과 공유해온 사회 풍경 속에서 글과 활동으로 연대를 이어온 이들에 관한 기록 2,240편 중 32편의 글을 취합해 펼쳐 놓는데, 이에 대한 분류 기준 〈별 별 별 별 별 별〉이 반짝이는 빛이 되어 이들을 드리운다. 〈어둑서니〉의 띄어진 몸체를 따라 전시장 외부의 몸체를 상상해 볼 때 즈음, 145편의 글을 품고 있는 <친구사이 소식지 — 흘리는 연습판>은 나에겐 처음으로 접한 고(故) 임보라 목사의 글과 활동,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다섯 편의 글을 엮어 책 『가상부스신청서 게이가 길 선종 동성애』을 손에 쥐여 준다. 집에 가는 길, 그들이 흘려낸 무늬는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가벼운 책이 되어 방 안에 자리한다.
여러 기록을 일정 시간 동안 한 공간 안에 펼쳐낸 전시 《흘리는 연습》은 30년의 세월과 그 앞에 흐르는 오늘까지의 시간을 갈라 외부의 관객이 접할 수 있는 전시로 펼쳐낸다. 친구를 친구로, 가족을 가족으로 호명하기 위해 삶을 받쳐낸 이들의 지나간 행적은 임시로 눈앞에 모습을 드리우며 그들이 묻어낸 삶 위에 포개질 이후의 경로를 되묻는다. 그들이 지속한 행적을 펼쳐낸 연습이란 이름의 수행은 그로 인해 각인된 무늬를 각자가 지속하던 길 위에 덧입혀 퍼뜨린다. 축적한 시간이 두텁기에 각자가 마주한 무늬는 상이할 것이다. 나에게 전시가 쥐여 준 다섯 편의 글을 엮어낸 책이 알지 못한 교회 내·외부의 행적과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었듯 각자가 마주한 현장과 기록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발걸음을 뚜렷한 갈래 위로 옮겨낸다.

자, 이제 전시의 시간이 지나, 연습의 행적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삶 내부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운다. 전시장을 나온 우리 역시 그들이 안과 밖에서 엮여낸 행적을 마음에 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돌아간 관객은 이들이 흘려낸 잔상을 뒤집어쓴 채, 지속될 여러 갈래와 그럼으로 넓혀진 경로를 상상하며 몸을 움직인다. 두려움에 상정한 미래의 언어를 덮고 실재의 행적을 수렴할, 또 다른 갈래를 그려내며 말이다.

사진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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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 연구자 / 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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