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36 김기민 : 여행노동자

인터뷰 및 정리 : 라이카

사진 : 낙타

 

여행노동자 김기민 씨, 친구사이나 LGBT 행사에서 몇 번 그를 마주쳤을 땐 새침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미소년인 줄 예상했었어요. 그러나 그가 손수 내온 홍차와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질문의 요지에 맞춰 달변을 보여주셨고 솔직하고 논리적이지만 따뜻함이 물씬 베어오는 말투는 그의 아기자기한 블로그랑 카페와 무척 닮아 있었어요.

 

라이카 : 안녕하세요. 이렇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김기민 : 네, 성북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81년생 김기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나이로는 서른셋이 되었네요.

 

라이카 : 예전부터 사용하고 계신 닉네임이 참 인상 깊었어요. ‘여행노동자’라는.. 닉네임에 대해 설명 좀 해 주세요.

김기민 : 사실 작년까지 쓰고 올해부터 바꿨거든요.(웃음) ‘노’자를 빼서 여행동자로.. 전에 쓰던 닉이 싫은 건 아닌데 이름 따라 간다고 맨날 일만 하는 거 같구(웃음), 주위에서도 제가 원래 생각했던 의도랑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라이카 : 아 그래요? 어떻게 오해하시던가요?

김기민 : 아무래도 ‘노동’이 들어가다보니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여행을 노동처럼 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하더라구요.

 

라이카 : 그럼 원래 의도는 뭐였나요?

김기민 : 그냥 열심히 일해서 여행다니는 사람이라는 가벼운 뜻이었는데 좋은 의미든 어떤 의미든 간에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다양하게 해석들을 하셨어요.

 

* 가도 가도 좋았어요.

 

 

라이카 : 그럼 닉네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행에 대한 말씀을 좀 들어볼까 해요. 닉네임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신 것 같은 느낌이 확 오는데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건가요?

김기민 : 혼자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거는 2005년부터였거든요. 그 전에도 단체 여행은 다녔었구요. 돌아보면 대학교 시절에 여행 다니기가 더 좋았을 거 같은데 그 때는 여러 가지로 경황이 없어서 여행 다니질 못했어요. 제가 ROTC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임관하기 전에 처음으로 터키와 이집트를 여행하게 되었지요.

 

라이카 : 그 여행이 굉장히 강렬했었나 봐요, 그 뒤로 여행을 계속 다니시게 된 거 보면요.

김기민 : 네 너무 좋았어요. 딱히 어떤 점이 좋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 그냥 모든 점이 좋았어요. 그래서 또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많이 생겼던 거 같아요.

 

라이카 : 그럼 그 때가 20대 중반 정도 되셨을 거 같은데, 저 같은 경우는 20대 때 정체성으로 고민이 생길 때마다 여행을 좀 다녔던 거 같아요, 그런 고민이 여행에 영향을 좀 미쳤을까요?

김기민 : 글쎄요, 무의식적으로는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겠는데요, 정체성 때문에 힘드니 여행을 떠나보자 이렇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라이카 : 그럼 그 뒤로 얼마나 많이 여행을 하시게 된 건가요?

김기민 : 지중해변에 있는 나라는 웬만큼 다 가본 것 같아요. 입국이 어려운 일부 국가를 빼고는요.

 

라이카 : 유독 지중해를 자주 다니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기민 : 아무래도 첫 여행지가 그 쪽이었는데 그 때 받았던 인상이 너무 강렬했고 가도 가도 새로운 게 계속 나오고 더 알고 싶고, 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 지중해의 게이 비치

 

 

라이카 : 그럼 그 지중해 중에서도 꼭 집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김기민 : 그러고 보니 불현 듯 생각이 나는데 아마 2007 년 도쯤이었던 거 같은데 그 때는 터키와 그리스 지역을 여행했거든요, 그 때 그리스의 미코노스 라는 섬에 갔었어요. 그 여행은 작정하고 그리스의 섬들만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게이들만 모여 있는 비치를 발견한 거예요.

 

라이카 : 그리스 ‘미코노스’ 섬에서요? 어머나..

김기민 : 네. ‘미코노스’ 섬 엘리야 라는 비치였고 거기에는 누드비치도 있었는데 그 옆에 게이들이 모이는 곳이 따로 있더라구요.

 

라이카 : (희번덕) 그럼 게이 누드 비치?

김기민 : 딱히 정해지진 않았어요. 다 벗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구요. 작정하고 간 건 아니었는데 그 지역을 설명한 책을 읽다보니 이런 곳도 있더라 해서 찾아가본 거였어요.(웃음)

 

라이카 : 뭐 해변의 로맨스 같은 재밌는 일 없었나요?

김기민 : 뭐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냥 거기 갔었다는 일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재미있는 일로 남아있어요.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반면에 굉장히 뻘쭘하기도 했어요. 막상 할 일이 없더라구요.(웃음)

 

라이카 : 그래도 동양 미소년이 등장한 건데 끈적한 시선들이 꽂히지 않던가요?

김기민 : 아무도 관심 안 갖던데요? 전혀, (손가락 끝을 가리키며) 이 만큼도요.(웃음) 그 밖에는 터키가 많이 생각이 나는데 그래서 그 나라를 자주가기도 했던 거 같아요.

 

라이카 : 터키를 다녀온 사람들은 좋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구요, 어떤 면이 그렇게 좋던가요?

김기민 : 그 나라는 여태까지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것하고는 다른 면이 가장 많게 느껴졌어요. 제가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라이카 : 좀 의외네요.(웃음)

김기민 : 네. 전 도시에서만 나고 자랐어요. 근데 그 나라는 도시에 있어도 도시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도시 밖은 뭐 더 말할 나위도 없구요. 그리고 그렇게 못 사는 나라가 아님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순수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았어요.

 

라이카 : 그럼 여행에 노하우도 굉장히 쌓이셨을 텐데, 꼭 지키는 원칙이 있나요? 방문하는 지역의 게이바는 꼭 들른다. 이런 식의.(웃음)

김기민 : (웃음) 저는 원칙이 없는 게 원칙이에요. 여행을 갈 때 여기, 여기는 가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고 그 밖에는 계획 없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녔던 거 같아요.

 

라이카 : 그 지역의 게이커뮤니티는 많이 방문하셨나요?

김기민 : 그렇지는 않아요...

 

라이카 : 나라면 꼭 갈 거 같은데... (웃음)

김기민 : 전혀 관심이 없거나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닌데 전 아침형 인간이거든요. 여행 패턴도 좀 그래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돌아다니다가 10시쯤이면 뻗어서 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아시다시피 게이 커뮤니티는 주로 밤에 활동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근데 10시는 커뮤니티에서는 초저녁이라.(웃음)

 

라이카 : 그럼 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거 같은데, 그 비용은 어떻게 충당을 하시나요?

김기민 : 부지런히 벌어야요.(웃음) 자랑 같은데... 제가 학교 다닐 때 장학금을 계속 받았거든요, 졸업한 후에 부모님이 수고했다고 200만원인가 주셨는데 그걸로 첫 개인 여행을 다녀왔구요, 제가 ROTC다 보니까 장교로 군 생활을 했는데 뭐 군대 있을 때 돈 쓸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그래서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여행자금으로 썼지요. 그 후로는 파트타임 일도 하구요.

 

라이카 : 그럼 정규직이나 장기적으로 일을 해 보신 적은 없는 건가요?

김기민 : 네, 군 생활이 최초이자 마지막 제 정규직 일이었어요.(웃음)

 

라이카 : 집에서는 뭐라 안하셨나요? 대학 때 공부도 열심히 하던 애가 졸업 후에 직업은 안 잡고 자꾸 나가기만 하니까.(웃음)

김기민 : 그런 면에서는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제 생각을 많이 이해해 주셨어요.

 

* 지금도 진행 중

 

라이카 : 그럼 부모님께 커밍아웃은 하셨나요?

김기민 : 네 2008 년도 이맘 때 쯤에 말씀을 드렸어요. 스물여덟 살 때요.

 

라이카 :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기민 : 막연히 군 제대 후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구요, 제대 후 여행을 다니다가 그 생각을 굳혔죠. 그러면서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가 서른 되기 전에 말씀드려야겠다 싶어서 말을 하게 된 거죠

 

라이카 : 부모님 반응은...

김기민 : 당연히 충격을 많이 받으셨죠. 특히 아버지 걱정이 많이 되었거든요. 역시 당일 날에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다니는 성당에 나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라이카 : 아 종교적인 도움으로 극복해보라는...

김기민 : 네 그런 의미였겠죠. 그런데 그 다음날 이러시는 거예요. 이게 아버지 당신께서나 저 그리고 집에서 노력한다고 달라지거나 고쳐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받아들이겠다.

 

라이카 : 헉, 굉장히 복 받으셨네요.

김기민 : 그런데 의외로 우리 어머니는 좀 오래가셨어요. 종교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으셨던 거 같고 개인적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리시는 거 같아요. 그 후로 5 년이 흘렀는데 집에서 제가 따로 이 이야기를 꺼내진 않아요. 그냥 제가 처음에 얘기한 상태로 멈춰있는 거예요. 제가 몇 번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의 반응이 별로 좀 안 좋으셔서 말하기가 힘들었네요.

 

라이카 : 어떻게 보면 진행 중이신거네요.

김기민 : 네. 그런 거 같아요. 전 말하고 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 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인 거 같아요. 그래도 저에게 별다른 압박이나 억압을 하시지는 않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라이카 : 동생은 반응이 어땠나요?

김기민 : 여동생은 저보다 2살 어리거든요. 동생은 제가 생각했던 거 이상으로 잘 받아주었어요. 동생이 무용이 전공했거든요.

 

라이카 : 뭐 그럼 주변에서 많이 봤었겠네요.(웃음)

김기민 : 네 많더라구요.(웃음) 그리고 동생은 뉴욕에서 5년간 있었는데 아무래도 주변에서 게이 친구들을 많이 보다보니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동생에게 결정적으로 고맙고 위로를 받았던 게 제가 이야기를 했을 때 동생이 울었거든요. 근데 운 이유가 제가 30년 가까이나 가족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힘들었을 걸 생각하니 안쓰럽고 미안해서라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감동을 받았죠.

 

* 블로그의 힘

 

 

라이카 : 모 포털사이트의 파워블로건데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주변에 아는 분이 파워블로거라니(웃음) 블로그는 언제 시작을 하신 건가요?

김기민 : 제대하고 2008년도쯤에 시작했어요. 그 때가 막 블로그가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라이카 : 그럼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김기민 : 처음에는 제가 연극이나 공연을 보는 걸 좋아하니까 보고나서 간단하게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했어요, 보관하기도 쉽고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편하니까요.

 

라이카 : 그럼 언제쯤 블로그가 주목을 받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걸 알게 되었나요?

김기민 : 그 당시에 연극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남기는 분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연극 공연에 관해 제 글이 오가고 리플이 달리는 걸 보고서는 아, 나만 내 블로그를 보는 건 아니구나, 살짝 알게 되었죠.

 

라이카 : 말씀하신 대로 블로그가 처음에는 개인이 온라인에 남기는 낙서장 같은 의미였는데 지금은 영향력 있는 블로거들도 많이 있고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기민 씨 입장에서는 블로그가 어떤 의미인 거 같나요?

김기민 : 이제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기인 거 같아요. 2010년도쯤에 한창 정점을 찍다가 블로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서 물의를 빚은 파워블로거도 있었고 지금은 좀 조정기간인 거 같거든요. 게다가 그 뒤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이미지나 단문 메시지 위주로 움직여 가다보니 비교적 장문의 글 위주로 구성된 블로그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기도 한 것 같아요.

 

라이카 : 그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활성화되면서 방문자 수에 영향이 있었나요?

김기민 : 방문자 수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요, 덧글 등에서 느껴지는 반응에는 아무래도 밀도가 좀 떨어진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라이카 : 그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하시나요?

김기민 : 네 하긴 하는데요, 딱히 재미있는 것 같진 않아요. 일적으로 연관된 것도 있고 제 블로그 글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런 매체를 이용하는 정도예요.

 

라이카 : 파워블로그가 된 지는 얼마나 되신 거죠?

김기민 : 매년 심사를 다시 하는데요, 2010년부터니까 삼년 정도 됐네요.

 

라이카 : 그럼 파워블로거가 되신 뒤로 변화된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전보다 주목을 많이 받게 되잖아요. 티켓을 많이 받게 된다든지 하는.(웃음)

김기민 : 사실 장점은 그렇게 없는 거 같아요. 티켓은 전에도 많이 받았었어요.(웃음) 오히려 파워블로그가 된 다음에는 제 취향하고는 잘 맞지 않는 공연 티켓이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이 생겼구요, 그리고 굳이 제 글이 보여지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 보여져서 부적절한 피드백이랄까 하는 게 생기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점은 있는 거 같아요. 전에는 그냥 제가 쓰고 싶은 데로 막 쓰다가 지금은 다른 관객이라든지 연출자 등의 입장이나 생각도 고려해보고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장점이라면 장점이 될 수 있겠네요.

 

라이카 : 블로그의 내용은 크게 보면 공연이나 전시의 리뷰, 그리고 여행 이야기,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인데 읽다보면 굉장히 따뜻하고 꼼꼼한 배려가 느껴져요. 일단 분량 자체가 웬만한 정성 아니면 못 쓰겠더라구요.(웃음)

김기민 : 비록 제가 초대를 받아서 공연을 봤다고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좋게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그건 공연을 만든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제 글을 오래 본 사람들은 단박에 알아요. 아 쟤가 홍보질을 해주고 있구나.(웃음) 그래서 최대한 제가 보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죠. 물론 표현 자체를 자극적이고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요.

 

라이카 : 그럼 방문자나 이웃들 중에 아무래도 게이들이 좀 많을까요?

김기민 : 글쎄요, 리플이나 글을 달 때, 난 게이입니다 하고 다시는 분은 거의 없으니까요. 간혹 비밀 덧글 등을 이용하시는 분도 있지만 많지는 않아요.

 

라이카 : 그럼 블로그를 통해 이루어진 모종의 로맨스는 없었나요?(웃음)

김기민 : 블로그 시작 이래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로지 공연에 대한 이야기, 여행지가 정말 멋있고 좋아요. 이런 이야기만 오고갔지, 니가 게이라서 좋아요 이런 적은 없었어요.(웃음)

 

라이카 : 그럼 블로그에서는 어떻게 정체성을 오픈하셨나요?

김기민 : 그냥 자연스럽게 작품 얘기를 하면서 오픈했던 거 같아요. 퀴어 작품인 경우도 그렇고 꼭 퀴어 작품이 아니더라고 작품을 볼 때 퀴어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라이카 : 가장 관심을 받았던 글은 뭐였나요?

김기민 : 딱 떠오르네요. *** 웹툰에 ‘** 편의점’이란 작품이 있었어요. 거기서 군대비누라는 소재로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의도적으로 게이를 비하하거나 희화하하려고 한 내용은 아니었는데, 군내 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고 이상하게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왜 군대에서 샤워하다가 떨어진 비누를 주우면 안 된다 라는 식으로 말도 안 되게 게이들을 비아냥대는 얘기들이 있잖아요. 그걸 부추길만한 소지가 있어서 너무 화가 난 거예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제 포스트로 올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글보다 공들여 쓴 거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 어떤 글보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구요,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했어요. 그리고 블로그 유입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잖아요, 결정적으로 아직도 그게 독보적 1위예요. 군대비누.

 

라이카 : 그럼 안 좋은 리플도 많았나요?

김기민 : 아니요, 대부분은 니 말이 맞다, 속 시원하다 하셨어요. 물론 중간중간 부적절한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제가 뭐라 하기도 전에 다른 분들이 리플로 비판을 해주셨어요. 그런 걸 보면서 세상이 그렇게 막돼먹지는 않았구나(웃음)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죠.

 

* 카페 ‘TEATEACACA’

 

 

라이카 : 운영하시는 카페가 너무 예뻐요. 지금 성북동에서 TEATEACACA 란 카페를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김기민 : 네, 2011년 7월에 오픈했거든요, 2년이 좀 안됐네요.

 

라이카 : 인상깊었던 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흔하지 않은 홍차 전문점이라는 거였어요.

김기민 : 우선 제가 커피를 잘 못 마셔요. 제가 즐기지도 못하는 걸 손님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건 좀 안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커피 전문점은 많잖아요. 그래서 어디가나 있는 커피전문점보다는 다른 걸 좀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라이카 : 그럼 홍차의 매력은?(웃음)

김기민 : 홍차 자체도 좋은데요, 제가 워낙 단 걸 좋아하거든요. 쿠키, 케이크 등 티푸드 들이랑 홍차가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요. 물론 커피도 잘 맞긴 한데요, 커피랑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죠. 그리고 커피는 좀 패스트푸드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홍차는 그렇게 시간을 절약하면서 마시는 차는 아닌 것 같아요. 좀 쉬어가고 일상 속에서 방점을 찍는 여유가 있는 음료거든요. 제가 워낙 여유를 좋아해요. 급한 거, 일 많은 거, 바쁜 거 싫어하는 제 개인적인 성향하고도 잘 맞는 것 같아요.

 

라이카 : 여기서 다양한 행사도 많이 열리고 또 기획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기민 : 아무래도 여기에만 있으면 사람들을 잘 못 만나잖아요, 그리고 나이를 먹다보면 사고도 좀 좁아지는 거 같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요. 그걸 경계하고 싶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기획하게 된 것들이에요. 쉽게 말하면 제가 관심 있던 주제들에 대해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편이에요.

 

라이카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요.

김기민 : 일단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거는 북클럽, 티클럽이 있어요, 북클럽은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임이구요, 티클럽도 차를 마시며 주제를 정해 이야기하는 모임이에요. 그리고 ‘집밥’이라고 하는 소셜다이닝 업체를 통해 모임을 하나 하고 있어요.

 

라이카 : 집밥이요?

김기민 : 네, ‘집밥’ 사이트에 원하는 주제, 모이고 싶은 장소, 함께 먹고자 하는 음식을 정해 모임을 개설해요. 그걸 보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가 신청을 하죠. 그 장소로 우리 카페를 이용하는 거죠. 제가 모임을 개설하기도 해요. 첫 주제가 ‘성소수자의 가족과 친구들’이라는 거였는데 예상과 달리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어요. 이건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있는 게, 오히려 친구들끼리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여행가면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 별별 얘기 다하게 되는 경우랑 비슷한 거 같아요.

 

라이카 : 벼룩시장도 하시는 거 같던데요?

김기민 : 날 좋을 때 가끔 하는데요, 저번에 카페를 좀 줄이면서 남는 비품들을 가지고 했던 벼룩시장은 반응이 아주 좋았죠.(웃음) 그렇게 해서 수익이 나면 벼룩시장에 참여했던 분들 자발적으로 조금씩 기부를 하기도 해요. 주로 사회복지 단체나 유니세프 등에 하지요.

 

라이카 : 일정에 있는 G모임은 뭔가요?

김기민 : 이번 달부터 해보려고 계획한 건데요, 아무래도 밤에 모이게 되다보니까 먹거리하고 상그리아를 준비해 볼까 해요.

 

라이카 : 상그.....

김기민 : 아, 와인에 과일을 넣어 만든 달콤한 술이에요.(웃음)

 

라이카 : 성북구 주민 게이들만 참여가 가능한가요?

김기민 : 꼭 그렇게 규정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지역 주민 분들이 오셔서 편하게 놀다가 가시면 더 좋겠죠. 놀다가 먼 길 가려면 귀찮잖아요.(웃음)

 

라이카 : 왜요? 모임이 재미있으면 택시비가 아깝지 않죠. 게다가 맘에 드는 상대라도 나타나면(웃음)

김기민 : 그런 건 기대하지 않고 있어요.(웃음) 제가 워낙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걸어서 이동하는 생활권을 예상해서 그렇게 말씀드린 거 같네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모여서 밀도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싶기도 하구요.

 

라이카 : 아까 여행지에서도 블로그를 통해서도 로맨스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럼 카페 손님과의...(웃음)

김기민 : 전~~~ 혀 없었어요.

 

라이카 : 아니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블로그도 굉장히 잘되시고 카페도 이렇게 예쁘고 훌륭한데 왜 그런 불행이 있었을까요?(웃음)

김기민 : 글쎄요,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러는데 저에게서 벽이 느껴진데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그런 게 아니라 선뜻 말을 붙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 이념은 달라도 이야기는 통해야 해요

 

 

라이카 : 그럼 외람된 질문이지만 연애는?

김기민 : 연애라고 할 만한 장기간의 만남은 없었어요.

 

라이카 : 서른 셋인데? 자 그럼 멍석을 깔아볼게요. 어떤 남자면 삼십삼 년의 벽을 뚫고 만날 수 있나요? 혹시 이 인터뷰를 보고 이상형이 카페로 찾아올지도.(웃음)

김기민 : 순박한 인상의 저 정도 체형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보수건 진보건 이념이 다른 건 상관이 없는데요, 저랑 이야기는 통해야해요.

 

라이카 : ??

김기민 : 제 친구 중에도 저랑 이념이 다른 친구가 있는데요, 다른 부분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그래 알겠어 하는 여지를 주다보니 오래 관계가 지속되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나와 비슷한 성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자기주장만 하게 되면 관계가 오래 못 가는 거 같아요.

 

라이카 : 문화 공연도 좋아해야 하구요?

김기민 : 물론 좋아해서 같이 보러 다니면 좋겠지만 좋아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그것까지 강요할 순 없잖아요.

 

라이카 : 이야기하다보니까 되게 열리셨는데 왜 연애를 못하셨을까요?(웃음)

김기민 : 그 놈의 벽이 문젠 거 같아요(웃음) 아마 애인이 없어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을 못 느끼는 마음의 태도 때문이지 않을까요? 있으면 좋긴 한데 없어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라이카 : 그런 게 아마 다른 사람들이 ‘벽’이라는 거로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럼 좋아하는 분에게 고백한 적은 있었나요?

김기민 : 물론이죠. 그런데 한번도 오케이가 났던 적은 없었어요. 저도 알았어 하고 쿨하게 넘어갔구요.(웃음) 저는 표현이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그 이면의 복잡한 생각까지 제가 다 유추해낼 수는 없잖아요.

 

라이카 : 다음 여행지는 생각해 두셨나요?

김기민 : 예전에 스페인을 잠시 들른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다시 가서 자세하게 다녀보고 싶네요.

 

* 일상으로부터의 휴식

 

 

라이카 : 자 인터뷰도 슬슬 마무리가 되가는데요, 카페 홍보 좀 해주세요(웃음)

김기민 : 오셔서 늘어지게 쉬실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 안에 계실 때만큼은 바깥의 바쁘고 짜증나는 일상은 잊으시고 편하게 쉬실 수 있는 공간. 오픈하자마자 오셔서 문 닫을 때까지 있으셔도 전 전혀 상관없어요. 다만 셋이 와서 두 잔만 시키는 건 싫어해요.

 

라이카 : (웃음)

김기민 : 일인당 한 잔씩은 시켜야해. 그 외에 시간은 전혀 상관없어요. 그게 상도덕이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일인 일잔.

 

김기민 : 아 그리고 제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LGBT영화제 홍보팀, SNS담당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6월 6일부터 열흘 동안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에서 제13회 서울LGBT영화제가 열려요, 많이 보러 오세요~

 

 

그의 블로그든 카페든 들르시면 편안하고 따뜻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인간 김기민 님에게는 더 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요. 그와 그의 공간에 많이 놀러가세요.^^

 

김기민님의 메일 주소 : ebonycrystal@naver.com

개인 블로그 주소 : blog.naver.com/ebonycrystal

TEATEACACA 카페 블로그 주소 : teateacaca.blog.me

 

※ 이 인터뷰의 내용과 사진은 김기민님과 친구사이의 동의 없이 다른 곳에 게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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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