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30 지현 : 사랑방 손님의 이효리



인터뷰 및 정리 코러스보이
사진 차돌바우

도발적이고 섹시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채식주의자, 소셜테이너, 게다가 품절녀인 삼십대 여성을 한명만 꼽아보시라. 이효리? 이효리라면 너무 쉽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은 이효리보다 앞서서 가수로 데뷔했고, 채식주의자가 된 것도, 소셜테이너가 된 것도, 애인과 커플이 된 것도 훨씬 앞서는, 그리고 이효리 만큼 아름다운 ‘레즈비언’인 지현이다.  
햇살이 따스하던 어느 주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의 사랑방에서 반짝이는 강물과 찰랑대는 커피를 번갈아 음미하며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들.



코러스보이 : 커밍아웃 인터뷰의 첫 번째 레즈비언인데요. 오늘 양 갈래로 묶은 헤어스타일이 너무 귀여우세요.
지현 : 감사합니다. (매우 좋아함)

코러스보이 : 형식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인적사항부터 물어볼게요.
지현 : 이름은 지현이고요. 나이는, 여자 나이는 비밀인데요(웃음) 음, 시집간 지 12년 되었고요, 커밍아웃한지는 5년째,  페미니스트 가수로 활동한지는 15,6년째고요.

코러스보이 : 끝까지 밝혀낼 거예요. 초등학교엔 몇 년도에 들어갔죠?
지현 : 1980년에 들어갔어요. 근데 이러면 너무 쉽다. 그거 말고 내가 중학교 때 88올림픽과 86올림픽이 있었어요. 그냥 그 정도로 해요. (웃음)

코러스보이 : 하시는 일이 여러 가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본인을 정체화 하시는지요?
지현 : 지금은 일 순위가 학생인거 같고, 두 번째가 노래하는 사람. 세 번째는 음, 남편?(웃음) 진짜 나 집에서 너무 남자노릇을 해서 부끄러워요. 이런 사람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안 될 거 같아.(웃음)

# 원래 보장된 게 없으니까 막 지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는 부분이 있죠.



코러스보이 : 한 가지 씩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학생이라면 무슨 공부를 하고 계세요?
지현 : 문화학이랑 젠더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코러스보이 :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요?
지현 : 음악 하는 사람으로의 정체성이 불안하잖아요. 취직해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잘나가는 가수도 아니고. 물론 돈의 문제는 아닌 거 같지만요, 그래서 나의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기가 불안정했을 때면 늘 학교를 선택했던 거 같아요. 학부 마치자마자 대학원을 바로 들어가서 다녔는데, 휴학했다 다니다 제적당했다 재입학했다,(웃음) 그렇게 7년이 걸려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근데 완성을 하고나니 또 허탈한 거예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또 음악만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거 같은 거예요. 난 되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인거 같다.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 한 거죠.

코러스보이 : 레즈비언들 만나보면 비슷한 또래의 게이들에 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대체로 서른이 넘으면 게이들은 열심히 직장생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렇다고 레즈비언들이 특별히 집에서 지원을 더 많이 받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공부하는 게이들은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가. 혹시 레즈비언들은 왜 학생 신분이 많이 하는지 생각해보신적 있어요?
지현 : 그게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여성의 위치, 아니면 여성에게 제공되는 사회적인 기회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는 거 같아요. 여성이고 특히 레즈비언이라면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학력자본이 되게 중요할 거고, 또 접근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남성들이 사회화되는 방식과 여성들의 방식이 다른데요. 자라면서 집이나 사회, 교육과정 안에서 여성들은 뭔가 경제적으로 책임감을 느껴야 된다고 훈련을 받는 경험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일자리 시장에서도 남녀경쟁이 있으면 처지거나 없거나 그런 식이니까. 그래서 공부를 택하지 않나 싶어요.

코러스보이 : 레즈비언들이 이쪽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은가요?
지현 : 많죠. 여성학이나 젠더스터디 등. 지금 한국 학계에서 퀴어스터디 하는 사람들은 다 여자예요. 사실 남성들은 하고 싶어도 못할 거 같아요. 여자들은 원래 보장된 게 없으니까 막 지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는 부분이 있죠. 근데 남자들은 잃을 수 있는 게 많은 거죠. 그리고 좀 신기한 게, 자기 직종에서 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커뮤니티에 잘 안 나타나요. 드러나게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운동권 사람들은 대개 공부를 하거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경우죠. 그런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 어릴때 꿈이 오페라 가수였어요.



코러스보이 :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가수 지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왜 가수가 되었어요? 어릴 때 꿈이 연예인?
지현 : (웃음) 어릴 때 꿈이 오페라 가수였어요. 우리 고모가 피아노를 쳤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잘하고, 잘하고(웃음) 좋아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오페라를 봤는데 그게 멋있었나 봐요.

코러스보이 : 어릴 때 성악공부 했어요?
지현 : 하고 싶었죠. 국민 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되게 오랫동안 했는데. 그게 나의 음악교육의 전부였던 거 같아요. 되게 좋았던 게 뭐였냐 하면 우리교회가 대형교회였어요. 중구 을지로의 ㅇ교회. 대형교회는 유능한 음악인들이 많이 모여요. 음악인들의 네트워크는 교회를 통해서 다 이루어지죠. 그래서 지휘자 선생님들이 지도를 잘해줬죠. 발성이라든가 악보 보는 거라든가 무대에서의 태도라든가. 그리고 합창단도 했어요. YWCA 소년소녀 합창단. 그래서 난 음악으로 대학에 가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성악레슨을 엄마한테 시켜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고등학교 가서 시켜준다고 했어요.    

코러스보이 : 그래서 고등학교 가서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현 : 중학교 때 합창단에서 공연이 있었어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에서 솔로를 맡았는데 삑사리를 낸 거야. 솔로를. 그래서 절망스러웠죠. 이제 노래를 못하겠다고.(웃음)

코러스보이 : 겨우, 그 정도의 일로? 너무 쉽게 허물어진 꿈 아닌가?
지현 : 그러니까요. 너무 속상했어요.(웃음) 근데 거기서 나의 삶을 결정해주는 절대자인 엄마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한 거예요. “얘. 너 몸으로 하는 건 안 되겠다.” 이 한마디를 딱 해가지고 ‘아 난 안되겠다.’그런 거죠.

코러스보이 : 그랬는데 어떻게 노래를 계속 하게 된 거예요?
지현 :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노래를 하고 싶었겠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성가대를 하고 또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운동권 노래모임이 있었어요. 우리 때 전교조 선생님들이 좀 계셔서... 학교에서 하고 집회도 가고 쟁가(민중가요)도 부르다가 대학을 갔죠.
대학을 가서는 밴드를 했죠. 그리고 학교 밖에서도 ‘또하나의문화’라는 문화운동단체에서 대학생연구 소모임이 있었는데 거기 활동도 한 거예요. 거기서 공부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랬죠. 아, 거기 이적도 있었고 김진표가 있었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이 되려고 하는 무렵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게 뭐지? 하고 생각을 하다가 가수를 생각한 거죠. 근데 뭐 그 전에도 노래는 계속 했던 거 같아요. 밴드를 하든지, 누구네 잔치에 가서 노래를 하든지.(웃음)

코러스보이 : 그때도 노래를 직접 만들고 활동했었어요?
지현 : 아뇨. 그때는 그냥 노래는 안 만들고 남의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97년도에 나는 페미니스트 가수로 활동 할 거야 라고 선언하고 카피곡으로 콘서트를 두 번 하고, 그 즈음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에서 활동을 하고, 그리고 내가 곡을 만든 건 1999년 쯤 시작해가지고 2000년도의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발에서 세 곡을 불렀지. ‘마스터베이션, 아저씨 싫어, cut it out.’

# 남자들 만나는 걸 딱 정리를 했더니만 드디어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지는 거야.



코러스보이 : 제가 지현씨를 처음 봤을 때는 아마 퀴어문화축제 때였던가? 머리를 다 밀고 나와서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줬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지현이라고 하면 그때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센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지현 : 97년도에 처음 활동할 때만 해도 제가 남자친구도 있는 어엿한? 이성애자였어요. (웃음)  머리도 길고 페미닌하고 그랬어요. 이성애자로 데뷔를 해서 활동을 했는데 마지막 남자친구랑 헤어질 즈음에... 이유가 그거였어요. 내가 이 남자친구를 페미니스트로서 너무 혼내는 거야. 혼내고 싸우고. 그러니까 얘가 너무 안 돼 보이는 거예요. ‘넌 왜 괜히 날 만나가지고, 넌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만한 앤데.’그래서 헤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아! 이제 더 이상 남자는 아닌 거 같아. 이건 내 옵션이 아니야.’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마침 어떤 언니한테...

코러스보이 : 꽂혔어요?
지현 : 어. 난 내가 그럴 줄 몰랐어. 너무 준비가 되어 있는 거예요. 여자한테 반할 준비가. 그래서 헤어지자마자... 아무튼 무슨 이야기하다 그랬지? 아, 그래서 그 즈음에 머리를 숏커트로 짧게 잘랐어요. 1999년 쯤 그때부터는 나의 정체성이 확 전환되는 시기였던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그전에는 본인이 레즈비언일수 있다는 생각을 안했어요?
지현 : 그전에도 여자는 좋아했어요. 근데 그게 디폴트 상태라 생각하는 거 있잖아요. 스무 살 즈음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남자친구들이었는고 계속 실패하고 삼 개월이면 다 끝나는 거야. (웃음) 그러니까 나는 뭔가 문제가 있고 연애를 못하고 관계를 못 맺는 무능한 인간이라 생각 했던 거예요. 그렇게 남자를 만나는 6,7년 동안을.  그러다가 ‘아, 이건 이제 정리를 해야겠다. 더 이상 남자들에게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돈이든 관계의 내용이든.’ 그렇게 남자들 만나는 걸 딱 정리를 했더니만 드디어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지는 거야. (웃음)
남자들과의 역사를 포장상자 안에 넣고 나니까, 내가 그 전에 좋아했던 여자들 생각이 나는 거야. 고등학교 때 가깝게 지냈던 여자애들, 스킨십,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내가 그런 걸 갖고 있었고. 남자들 만나면서도 난 그런 걸 원했었던 거죠. 남자 몸에서 여자를 찾고 있고, 막.(웃음) 남자친구를 선택할 때도 나의 기준은 내말 잘 듣는 남자애여야 하고 나보다 어려야 돼. 그리고 데이트 가서도 내가 돈 써야 돼.

코러스보이 : 그 사람들 완전 좋았겠다. (웃음)
지현 : 근데 그렇게 하면 어떤 남자애들을 만나게 되느냐 하면 약간 막내 동생 같고 자신감 없는... 자기가 돈을 쓰면서 남자들이 자신감을 갖기도 하잖아요.(웃음) 아무튼 그랬어요.

코러스보이 : 헤어스타일 이야기 하다 여기까지 흘러 왔는데요, 다시 돌아가서 머리는 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거였어요?
지현 : 1999년에 머리를 짧게 잘랐잖아요. 그리고서 그때 데뷔를 하고 이프 잡지(인터뷰어 주이프 IF 1997년 창간된 페미니스트 잡지. 현재는 웹진으로 발행)랑 인터뷰를 하고 뭐 활동을 약간 하기 시작하는데... 근데 사진을 찍으면 안 예쁘게 나오는 거예요, 숏컷이. 그리고 아!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들어간 것도 머리를 빡빡 민 것의 큰 이유가 됐던 거 같아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딱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다들 궁금해 하는 거야. 니가 팸이냐 부치냐. 그게 되게 싫은 거예요. 난 페미니스트잖아. 그런 남,녀 (구분)하는 거 싫어가지고  여자들과 만나고 새로운 여자들과의 관계로 들어왔는데 이안에서도 자꾸 니가 부치인지 팸인지 증명해라, 그래가지고 오히려 그때는 남장하고 다녔어요. 양복 입고.(웃음)  그래서 어느 날 그냥 화장실에서 확 밀어버렸어요. 그때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미는 애들 많았거든요. 바리깡을 갖고와가지고 다 밀어버렸지. 근데 밀어보니까 그게 괜찮은 거예요. 색깔 있고 메이크업도 잘 먹고. 그리고 레즈바 가면 일단 무서우니까 팸인지 부치인지 안 물어보고.(웃음)
  
코러스보이 : 엄마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나지 않았나요?
지현 : 나와서 살 때라 괜찮았어요.(웃음) 가족들 만날 땐 모자 쓰고 다녔어요. 꼴 보기 싫다 그래가지고.

# 노래는 그냥 즐겁고 행복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기 위해서 하는 거다.



코러스보이 : 그때 음반도 나오고 TV 에도 나오고 활동하다가 한동안 쉬셨잖아요? 왜 쉬신 거예요?
지현 : 활동을 많이 했을 때는 갈등도 많았어요. 동료들과의 갈등도 많고 음반 제작하는 과정. 그담에 콘서트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막 확인하는 거예요. 내가 그것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일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2004년에 잠깐 멈추고 있던 석사과정을 다시 했죠. 빨리 졸업하고 유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한 거죠. 논문을 쓰고 나니까 뭔가 또 다른 모색을 해보려고 단체 쪽을 여성문화운동 단체 쪽 일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상처를 받고, 그러다가 다시 학교를 다니고... 그리고 아. 다큐멘터리가 나갔어요. 공중파에.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야. 그게 막 미치겠는 거예요. 전철을 탈수가 없는 거예요. 일단 머리를 빡빡 밀어가지고 눈에 띄는데다가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경험을 하면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거죠. 유명인도 아닌데 밖에 못 나가겠고 사람들 만나는 자체가 불편해진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가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시간이 제일 괴로운 거야. ‘저는 지현이어요.’ 이러면 '지현이 누구야?' 이래도 상처받고, '아, 그 지현요?' 이래도 상처 받고. 다 힘든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약간 은둔했죠.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혹은 나를 전혀 모르는 데만 가거나. 거의 인간관계도 폐쇄적으로 되고. 애인하고만 얼굴 쳐다보고 있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그게 작년 두리반 공연(인터뷰어주- 2009년 홍대앞 칼국수집 ‘두리반’강제철거에 대한 저항 농성으로 시작되어 재개발과 철거 문제에 맞서 문화예술인과 연대하는 농성 문화를 만들어 낸 투쟁 및 공연활동) 이후에 자유로워져서 어디 가서 ‘저는 노래하는 지현이고요.’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자신 있게 나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그럼 두리반 공연을 계기로 새롭게 힘을 얻고 또 그전보다 사회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가수가 되시기로 한 거예요?  
지현 : 음... 나는 노래를 왜 하나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노래를 해봤을 때 나한테도 위로가 되지만 그 장소,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았어요.  내가 한창 공연하고 다닐 때는 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아티스트의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거 같거든요. 공연의 완성도. 예를 들어 앰프가 훌륭하고 엔지니어가 좋아서 내 목소리를 잘 뽑아주면 공연하러 가고, 아니면 안 가고. 이런 걸 몇 년 동안 하고 나니까 노래하는 거 자체가 재미가 없는 거예요. 아니 도대체 내가 노래를 왜 하지? 나 뭣 땜에 노래하지? 라는 생각을 할 때, 아, 지_보이스(인터뷰어 주 2003년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게이합창단)도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지_보이스 공연을 보러간 거 자체가 되게 심금을 울리는 거였어요. 언제지? 겨울에 종로에서 되게 조그만 소극장에서 했을 때. 2006년 겨울? 아, 진짜 나 그때 막 울었잖아. 그리고 나서 차별금지법 투쟁 땐가 ‘금관의 예수’ 부를 때 막 울고...흑흑 (웃음) 지_보이스를 만난 게 나한테는 큰 소득인거예요. 그래, 노래는 즐겁게 해야 해. 그게 사회적 의미를 갖는 거, 대의명분을 갖는 거, 완성도를 가져서 아름다운 것도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건 노래는 그냥 즐겁고 행복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기 위해서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죠.

코러스보이 : 짝짝짝. 지현씨가 만든 예전 노래들을 보면 굉장히 센세이셔널한데 지금도 이런 가사가 여전히 먹힌다는 사실이 더 놀랍더라고요. 혹시 요즘에도 새로운 노래 만들어요?
지현 : 2006년도에 조금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음악도 하고 단편 애니매이션 비디오도 만들고 위안부 할머니들, 탈성매매 여성들이랑 같이 하는 노래수업 프로젝트인‘소외여성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라는 것도 하고 대안학교에서 수업도 하면서 ‘그럼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야겠다.’생각한 거죠. 그때 가사를 많이 썼었어요. 사실 그 프로젝트의 완성은 앨범이 나오는 거였는데 그때 곡을 못 써서 그렇게 까진 못했고요. 최근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씨라고 그 친구가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자고 해서 여성뮤지션들이 여럿이 모여서 음반작업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곡을 하나 썼고.

코러스보이 : 우와~ 드디어 신곡이 나오는 거예요?
지현 : 네 공연 보러오세요. 신곡이 나오고 또 곡을 써야죠. 음악 스타일은 달라질 거 같아요. 그전에 1집에서 했던 것들이 선동적이고 구호도 있고 그런 거라면 이젠 조금 더 내면으로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그 작업을 재밌게 하고 있어요.

# 그래? 마이너리티의 삶은 힘든 거다. 알지?” 막 이러시는데.



코러스보이 : 네. 인터뷰 끝에 공연도 홍보해드릴게요. 그러면 커밍아웃 이야기로 가 볼게요. 커밍아웃은 어떻게 하셨어요?
지현 : 음, 데뷔하고 초창기엔 숨겼던 거 같아요. 인터뷰하면 기자들이 촉이 있잖아요? 그래서 ‘혹시 여자 좋아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아유, 뭘요.’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그랬어요.  일간지나 방송매체랑 인터뷰 할 때는 왠지 그걸 얘기 하려면 뭔가 선언 폭로 이런 식으로 확 해야 할 거 같은. 예를 들자면 그때 홍석천씨 같은 경우에 일면 기사로 착 나오고 그랬잖아요. 지금 같으면 ‘아, 나 애인 있고 애인은 여자고 내가 너무 당연하게 사랑하는 일상이니까 이걸 내가 이야기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고 당신이 만약 이상하게 받아들인다면 네가 이상한 거다.’ 이런 식으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만 해도 되게 어려웠던 거 같아요.
암튼 그랬는데 언제부터 커밍아웃을 자연스럽게 했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조금씩 조금씩 계속 했던 거 같아요. 내가 첫 번째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도 가깝던 사람들한테는 이야기한 거 같아요. 친구들한테 다 이야기하고. 그리고 또 언제지? 아무튼 2007년도 차별금지법제정이 이슈화 되었을 때가 결정적이었던 거 같아요. 내 가족들한테 그러니까 엄마랑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서 2007년 12월 1일 편지에 써서 낭독했어요.

코러스보이 : 편지에다요? 그래서 가족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지현 : 엄마는 되게 쿨한 척 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학교에 계셨고 독문학 전공이신데 최근의 여성문학작품을 하다보면 레즈비언 이슈들을 안 만날 수 없어요. 내가 커밍아웃 하기 전에는 ‘얘 글쎄, 독일의 이 배우는 바이섹슈얼 이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했었기 때문에 딸이 커밍아웃을 해도 되게 침착하게 받아들여야 될 거 아냐. 그래서 “그래? 마이너리티의 삶은 힘든 거다. 알지?” 막 이러시는데. (웃음)

코러스보이 : 되게 멋있는 반응인데요?
지현 : 근데 일주일 쯤 있다가 다시 불러 ‘얘. 너 집에 좀 와라.’이러시면서. (웃음)  그때 불러서 했던 말이 뭔가 하면 ‘그래 식구들끼리는 다 그럴 거라고 생각을 했다.’였어요. 왜냐하면 애인이랑 나랑 같이 산지가 그때 벌써 7,8년이 되었기 때문에 ‘같이 사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쟤는 남자는 안 만난다. 결혼도 안한다고 그런다.’ 그러니까 뭐.  

코러스보이 : 할머니의 커밍아웃 반응도 되게 궁금해요. 더 앞선 세대잖아요.
지현 : 근데 할머니는 한 다리 건너이기 때문에 되게 담담하세요.‘그래? 뭐 옛날에도 그런 사람들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러시면서 근데 밖에 나가서는 얘기하지 말라고. (웃음) ‘아니, 할머니. 밖에서는 다 알아요.’ 그랬어요. 그리고 그때 내가 잡지 버디의 표지모델을 했었거든요. 근데 우리 막내삼촌이 그걸 어디서 보고와가지고. ‘어이, 너 거기 나왔더라.’ 막 이러는 거야. 그래가지고 ‘아니 저 남자가 그걸 왜 알지? 혹시?’ 막 이러면서. (웃음) 그 잡지 찾아볼까요. 표지 땜에 무용잡지같이 보여요.

코러스보이 : 우와, 저 강렬한 시선. 지금과 너무 달라 못 알아볼 거 같아요.
지현 :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웃음)

# 이렇게 집에서 제일 큰 공간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코러스보이 : 지금 동반자인 분과 사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십년이 넘었다는데 오래 갈수 있는 비결이 뭐예요?
지현 : 일단은 되게 잘 맞아요.

코러스보이 : 처음부터 맞았어요? 아니면 오래 사귀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둘이 서로 맞춘 거?
지현 : 첨부터 잘 맞았던 요소도 있었고 살면서 맞춰온 게 있는데 첨부터 잘 맞았던 게 우리 둘 한테는 중요한 요소였던 거 같아요. 예를 들자면 정치적 견해라든가, 그리고 뭐 예술적인 취향 혹은 그런 감수성이라든가 그런 게 잘 맞아서 좋아했는데. 그러고는 십 이년 동안 되게 열심히 싸웠어요. 아직도 싸우고 있고. 근데 싸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싸우면서 서로 성장하고 변하고.

코러스보이 : 주로 뭣 땜에 싸워요?
지현 : 뭐, 진짜 사소한 거죠. 저렇게 설거지 쌓여 있으면 애인은 들어오자마자 ‘야, 집에 있으면서 설거지도 안 해놨냐?’ 그러면, 내가 꽥 소리 지르며 ‘내가 어쩌고저쩌고 얼마나 바빴는데!’이러면서. 완전 남편이라니까. (웃음) 그런데 이제 그렇게 서로 싸우면 토라지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왜 화가 날까 뭐가 섭섭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서로 성장한 거겠죠.

코러스보이 : 집안 일 분담은요?
지현 : (웃음) 난 사실 안 해. 근데 난 뭘 할 수가 없어요. 가만히 있어야 돼. 내가 뭘 해놓으면 ‘아니 그게 아니고’라고 막 그래요. 자기 기준에 안 맞거든. 그래서 난‘알았어. 그냥 가만 있을게.’그러는 거죠.

코러스보이 : 집이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 있고 사람냄새가 나서 좋아요. 되게 오래 산 살림집 같은 분위기? 이쪽 거실은 서재 같고, 부엌은 시골 살림집, 작은 방이랑 사진이 붙어있는 벽은 연예인집, 베란다는 시골 외할머니네 마당, 이런 식으로요. 보통 다른 친구들 집에 가보면 대체로 아예 지저분하거나 아님 다 치워서 아무것도 없거나 둘 중 하난데.
지현 : 사실 이 공간에 소파랑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다른 집도 거실은 그렇잖아요. 근데 난 그게 늘 너무 싫은 거예요. 이렇게 집에서 제일 큰 공간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테이블 엄마 집에 있던 건데 엄마가 집을 빼면서 갈 데가 없어져가지고 내가 가져와서 여기 이렇게... 퀴어타운 프로젝트(인터뷰어 주 2011년 친구사이에서 준비했던 대안공동체를 모색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적합한 주거환경의 모습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할 때 내가 젤 하고 싶었던 게 그거거든요. 각자의 사적인 공간을 열어서 왔다갔다하고 누구네 집에 모여서 막 얘기도 하고. 시골집은 ‘누구 있어?’ 그러면서 막 들어가잖아요. 그런 농촌 풍경이 좋았던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좋은 생각이네요. 서로의 생활 오픈해서 어떻게 사는지 보기도 하고 서로 이웃해서 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미리 체험해보기도 하고.
지현 : 그러니까 몇 명이 모이더라도 사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공유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학기에 내가 할 게 뭔가 하면요, 정릉 생명평화마을 이라고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있어요. 거기가 집값이 싸니까 다 이사해 갔나 봐요. 넓은 집들이 있으니까 자기 마당에서 콘서트도 하고. 시골 산동네 같은데 거기 가 보려고요. 근데 모르지 뭐, 연탄 때는 집일지도. 뭐가 묶여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재개발은 못하고. 그래서 싼가봐.

코러스보이 : 퀴어타운프로젝트 다시 재개하면 계속 하실 거죠?
지현 : 그럼요 그게 요즘 나의 젤 화두인데.

코러스보이 : 집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기 놓인 크리스마스트리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네요. 저건 왜 아직 나와 있어요? 계속 칭찬만 하지 말고 트집을 좀 잡아야지.
지현 : 들어가야 되는데.(웃음) 난 크리스마스를 되게 좋아해요. 내가 트위터에서도 올리잖아요. 사랑의 명절 크리스마스 제발 좀 애인들끼리 사랑타령만 하지 말고 진짜 널리 하는 사랑을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코러스보이 : (벽에 걸린 수많은 사진들 가리키며) 근데 애인끼리만 사랑을 하고 있는 벽에 걸린 수많은 사진들은 어쩔 건데요?
지현 : (웃음)

코러스보이 : 저런 사진들도 자칫 조잡해보일 수 있는데 보기 좋게 놓여 있어요. 우리가 온대서 청소한 건가? 물건들 놓여 있는 거 보면 엄마들이 오랫동안 살림한 집 같아.
지현 : 여기 가구들 다 여기저기서 모은 거예요. 저 협탁도 손잡이 다 뜯어진 거거든. 그 전에 살던 집의 붙박이 가구로 있던 걸 들고 온 거야. 사실 내가 아무것도 안보이게 싹 치우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에 반성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삶의 과정을 보이는 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가. 좀 너저분하게 살면 어떤가. 그래서 나를 깨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커튼도 이 집 주인이 달아놓은 거 안 가져간 거예요. 처음엔 너무 촌스러워서 다 뜯어버리려 했는데 놓고 쓰니까 쓸 만하더라고. 그리고 저걸 갖다 버리면 폐기물이 되잖아. 나는  채식도 하고 생태를 걱정하는 사람인데 폐기물을 그렇게 버리면 안 되잖아.(웃음)

# 나 효리랑 친구 하고 싶은데.



코러스보이 : 참,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했어요?
지현 : 10년 되었는데 요새는 계란이랑 해산물은 먹어요. 나 빡세게 할 때는 너무 나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 해가지고... 예전에 그런 적 있었잖아. (인터뷰어주 2년전 인터뷰어와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채식주의자로서 먹을 음식이 없어 식당을 옮겨 다닌 적 있음.)

코러스보이 : 어떤 동기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현 : 어렸을 적부터 생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가죽제품 사용, 화학제품 사용에 대한 고민을 늘 하면서 실천했는데, 그런데 그게 유행에 따라서 가죽을 또 쓰기도 하고.... 그래도 모피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러다가 육식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 그리고 그 고기에 남게 되는 고통과 아픔의 흔적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제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커다란 고기 (소와 돼지)만 먹지 말자고 그랬는데, 채식과 관련한 공부를 꾸준히 하게 되면서 점점 닭고기, 해산물, 달걀, 유제품 등등을 모두 안 먹는 단계까지 실천했었지요. 그러다가 요즘은 타협적인 채식을 하고 있어요. 문화연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모순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타문화를 알려면 "먹는 것"에 대해서도 좀 열려있어야 하는데 채식, 그것도 아주 엄격한 비건(Vegan)채식을 하는 것은 나의 문화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요즘은 ‘큰 고기 즉 육고기와 날짐승고기’만 안 먹고 다 먹어요. (웃음)

코러스보이 : 채식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지요? 혹은 채식하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지현 : 가장 좋은 점은, 요리 후 설거지가 무척 간편하다는 거예요. 집에서는 생선 요리도 먹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냄새가 남는 설거지 거리가 없어요. 간단하죠. 그리고 몸이 느끼는 좋은 점은, 이건 비건(Vegan)채식을 할 때 더 느꼈던 건데 감기에 걸려도 비교적 빨리 회복하고, 별로 아프지 않는다는 거예요. 위와 장에 문제도 별로 없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지난번 구제역 사태 때도 그랬지만 고통당하는 동물들에게 비교적 덜 미안하다는 거예요.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진다고 할까요. 아! 그리고 식비가 적게 들어요. 채소와 버섯, 감자 고구마가 아무리 비싸도, 고기 보다는 싸거든요.(웃음)
그리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할 때, "고기 들어가요?"하고 물으면 그 질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응 고기 안 들어가요. 갈은 고기만 들어가요." 라던가, 육수에 들어가는 고기는 고기로 생각하지 않는다던가, 뭐 그런 제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지요. 필리핀에서는 "나도 베지테리안이야, 나도 채소 좋아하거든!" 이라며 베지테리안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던져주는 친구들도 있었구요. 다 재미나고, 유쾌한 순간들이죠 뭐.

코러스보이 : 그러고 보니 완전 엘지비티(LGBT) 커뮤니티의 이효린데요.
지현 : 아! 나 효리 너무 좋아. 효리랑 친구하고 싶은데.(웃음)

# 커밍아웃을 폭탄선언처럼 하지 말라고 해요.



코러스보이 : 이제 대충 마무리해야 할 거 같은데 마지막으로 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지현 : 커밍아웃 이야기요. 가족들한테 2007년도에 하고나니까 그다음부터는 무서울 게 없는 거야. 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들이 다 내가 레즈비언인걸 알고 그걸 지지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수업시간마다 그냥 다 얘기하는 거예요. 이번 학기엔 또 신학대학원 수업도 들어요. 거기 들어가서 첫 시간에 이야기 했잖아. ‘저는 12년 된 파트너와 살고 있는 레즈비언이고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적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너무 떨린다.’(웃음)

코러스보이 : 아무리 개방적으로 시대가 변해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지현 : 몰라. 내 앞에서 안 그러니까. 뒤에선 그럴지도 모르죠.(웃음) 그리고 내가 너무 자신 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사실 어쩔 줄 몰라서 ‘아아 그래요?’그러죠.  한번은 국민학교 동창들 만나서 이야기 하면서 ‘내가 너네한테까지 이런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랬는데 애들이 막‘아우, 야. 그냥 해.’ 그랬어요. 그래서 ‘응 우리 애인이 여자거든.’그랬더니 옆에서 몇 명은‘아아, 나 옛날에 가게 할 때 알바 하던 애도 게이였어.’라고 그런 이야기를 막 해요. 또 어떤 애는 ‘내 동생도 같이 사는 여자애가 있는데 레즈비언인 게 의심 돼.’ 그러기도 하고.

코러스보이 :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게이레즈비언을 대놓고 욕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는 것 같아요. 요새는 그러면 무식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잖아요.
지현 : 맞아요. 그리고 만약에 내가 이미 주눅 들어서 얘기하면 반응이 달라질 거 같아. 예를 들어서 ‘사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니가 나를 계속 좋아할지 모르겠다. 니가 나를 안본다고 해도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다. 사실 나 동성애자다.(침울한 톤)’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응 나 애인 새로 만났는데 되게 멋있는 남자다.(밝은 톤)’이렇게 말하는 거랑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요샌 누가 커밍아웃하고 싶다 그러면 제발 그걸 어떤 선포, 폭탄선언처럼 하지 말라고 해요. 일단 자기의 삶이 자기한테 일상적이 되도록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저도 많이 공감하는 부분인데요, 커밍아웃에 대해서 너무 무겁게들 이야기하니 준비하는 사람들이 폭탄을 터뜨릴 준비만 하는 거죠. 커밍아웃하기 전엔 집에서 독립할 걸 각오하고, 경제적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하고, 빵빵한 애인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서 예상가능한 반응들 중 부정적인 것들만 생각해서 지레 겁을 먹으니 폭탄선언이 될 수밖에요.
지현 : 또 학교가 우리 과가 날 받아주는 게 되게 든든해요. 만약에 내가 그게 안 통하는 전공이나 선생님을 만났다면 다르겠죠. 신학과에서 이야기할 때도 나의 백그라운드가 ‘우리 과 가면 이런 얘기는 하나도 이상한 건 아니야. 이상하게 반응하면 니네는 진짜 이상한 애들이다.’ 이런 자신감도 있었고요, 또 ‘2007년에 차별금지법제정이 이슈가 되었을 때 기독교에서 집단적인 혐오를 표시하는 걸 보고 너무 상처받았고 그때 난 신앙을 잃었다.’ 이런 이야기랑 ‘최근에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그렇게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난 정말 기독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리 말하고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싫어도 말을 못하지. 그래서 자신감이 중요한 거 같아요.

코러스보이 :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집에 초대해주셔서 고맙고요. 애인 분에게도 고맙다는 말 대신 전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애인에게 한마디 하자면?
지현 : 너무 사랑하고요.

코러스보이 : 그런 가식적인 멘트 말고요, 녹음기 끌 거예요.
지현 : 우리 애인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잘 살아줘서 고맙고요. 아, 진짜 (녹음기) 껐어.(웃음)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아요. 참, (인터뷰어 및 사진 촬영자에게) 당신들이 여기 사랑방처럼 바꾸고 나서 찾아온 두 번째 손님이어요.



‘두 번째 손님’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설렘을 안고 지현님의 사랑방을 나섰다. 그의 사랑방에는 앞으로도 다양한 손님들이 여러 사연을 갖고 찾아올 테고, 그들은 퀴어타운을 꿈꾸는 오지랖 넓은 아낙 지현의 소탈한 웃음에 쉽게 무장해제 될 것 같다.
참, 해가 갈수록 농익어지는 무대 위의 지현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빠른 시일 내에 꼭 경험해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그의 무대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맞다. 치명적이다.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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