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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2014-03-19 오전 10: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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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서평]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짧은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현란한 수식을 걷어버리고 주어와 술어만 있는 문장의 연쇄는 언어의 굴레에서 날것을 그대로 내보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진리에 성큼 다가섭니다. 김훈같은 이가 대표적이지요. 앙상한 뼈대만 있는 문장들로 겨우 원고지 세 매를 채웁니다. <거리의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된 31개의 단편은 장편 이상의 무게감을 지녀, 독자의 마음을 울립니다. 얇은 책에도 힘이 있습니다. 혁명으로 혼란스러웠던 프랑스에서 사람들을 격동시켰던 것은 루소의 <사회계약론>같은 대작이 아니라, '왕비는 오스트리아 암캐이며 자기 아들과도 사통하는 쓰레기'라는 원색적인 포르노 팜플렛이었습니다.

 

책읽당에서 읽은 2월의 책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2011) 역시 짧은 글, 얇은 책입니다. 발간 직후 프랑스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20여 개 국에 번역/수출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분노하라'는 정신을 이어받은 시위가 유럽을 강타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인의 주장은 명료합니다. '이제 (레지스탕스의) 총대를 넘겨받으라고. 분노하라'고. 그는 인간의 존엄을 가로막고, 시민적 가치를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 현상에 대해 분노합니다. 굉장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도 관점에 따라서는 거대한 사회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나 자신의 잘못으로 빚어진 결과가 아니라면 누구의 말마따나 토익책이 아니라 짱돌을 들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그의 분노는 '묻지마 살인'같은 몰가치적 행태가 아니라, 의분입니다. 역자의 지적처럼,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분노라는 말보단 분개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테지요. 100년에 걸친 저자의 관심은 레지스탕스 치하의 피억압자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해방 후 유엔인권선언 작성을 지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까지 다양하게 옮겨갑니다. 작고하기 몇 년 전에는 생태 및 환경문제에 진력하여 유럽 의회 선거에서 유럽 에콜로지 당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하였습니다.

 

고인의 다양한 감수성을 일이관지하는 정신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분노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세태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는 체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경마장의 말처럼 눈가리개가 씌워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

 

고리타분한 공자님 말씀이겠지만, 유가에서 말하는 핵심은 '인'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마비를 불인(不仁)이라고 한답니다. 바꿔말하면 인이란 마비되지 않은 상태, 육체적 정신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실천윤리의 덕목으로서 인은 나에게 민감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민감해지는 일이며, 다른 세계에 관심을 주는 일이고, 주변을 둘러보는 일입니다. 이런 과정은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을 살리는 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스테판 에셀의 말처럼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입니다. 나에게만 신경쓰다보면 스스로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내 앞가림을 넘어 인간다운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게 막는 다양한 대상들을 찾아, 우리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찾는 시민적 덕성이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저자의 인생은 감동과 경이의 연속이지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우리가 - 최소한 저는 - 따라가기 벅찬 것이 사실입니다.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놓고 싸우기에는 개인에게 과도한 굴레를 덧씌우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의 정당과 정치조직들이 우리의 고민을 반영해준다고 믿기 어렵기도 합니다. 고인이 한창일 적엔 분노와 타격의 대상이 명확했지만, 지금은 오리무중이라는 말도 복합적인 구조를 설명하기에는 막연합니다.

 

그럼에도 망백을 향했던 고인의 문장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동안 간과하기만 했던 가치에 대한 일깨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 목수정이 고인을 위해 발표했던 추도문에서처럼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자는 행복할 수 없으며, 분노하는 것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글이 힘 센 이유는 그 부족한 행간을 우리의 상상력이 메꿔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이런 점에서 짧지만 강력한 글입니다.

 

 

 

분노하라.jpg

 

: 스테판 에셀, 임희근 역, <분노하라>, 돌베개, 2011.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2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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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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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_233987 2014-03-19 오후 19:35

좀 더 아름답게 재대로 분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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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 2014-03-19 오후 22:07

간결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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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014-03-20 오후 19:17

아, 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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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D 2014-03-21 오전 10:11

책처럼 간결하지만 힘 있는 서평, 좋아요.
책읽당에는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은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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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2014-04-01 오전 04:29

이열~!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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